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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에 적은 오늘의 기분

by 게으른루틴

요즘 매일 밤, 침대에 눕기 전 다이어리를 펼친다.
오늘의 기분을 한 줄이라도 적어보려고.

처음에는 어색했다.

매일 비슷하게 흘러가는 하루에

‘기분’을 구분하는 게 의미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써보면 알게 된다.
오늘이 어제와는 조금 달랐다는 걸.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짜증이 밀려왔다가, 아메리카노 한 잔에 가라앉음.”
“오전은 흐림, 오후는 웃음, 퇴근 후는 무력.”
“한마디도 하기 싫었던 날. 아무도 묻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긴 문장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오히려 간결하게 남긴 그 한 줄이,

내 하루의 결을 가장 진하게 보여줬다.


감정을 기록한다는 건
그 감정을 지나쳤다는 증거다.
무시하지 않았고, 모른 척하지 않았고,
그저 잠깐이라도 내 마음을 들여다봤다는 것.

기분은 날씨처럼 바뀌니까
이 기록은 일종의 기상일지 같기도 하다.
‘오늘의 나’가 어땠는지 알아차리기 위한 기록.
그게 루틴이 되었다는 건,
어쩌면 그만큼 내가 나를 돌보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물론 가끔은 쓰기 싫을 때도 있다.
하루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버거운 날.
그럴 땐 그냥, 이모티콘 하나 그려 넣는다.
그게 오늘의 내 전부일 수도 있으니까.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닌 이 다이어리 속엔
가끔은 어른스러운 나, 가끔은 유치한 나,
그리고 항상 진짜 내가 들어 있다.

오늘의 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펜을 드는 이 순간, 조금은 차분해지는 걸 보니
아마도 ‘안정’ 쪽에 가까운 것 같다.
기분을 쓰는 것만으로도 정리되는 나날,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와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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