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거울 앞에 선 나는
기초 케어까지만 하고 화장을 포기했다.
쿠션도 안 두드렸고, 립밤만 바른 채 나섰다.
피부도, 마음도 지쳐 있는 날이었다.
“그래, 이 정도면 됐어.”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기운 없이 바른 크림 하나에
묘하게 안도했다.
예전의 나는 이런 날이면 하루 종일 불안했다.
덜 준비된 모습이 들킬까 봐,
무심하다는 말을 들을까 봐.
꾸밈없는 얼굴로 사람을 마주하는 일은
왠지 모르게 나 자신을 내놓는 느낌이라
쑥스럽고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온전한 준비가 어려운 날도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고,
그런 날에 나를 덜 미워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기초만 겨우 바르고 나온 얼굴로
지하철을 타고, 지인과 만나 커피를 마시고,
그렇게 하루를 살아낸 나에게
조금은 다정해지고 싶었다.
화장으로 완성되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나였고,
꾸밈없는 얼굴 아래에도
감정은 진하게 흐르고 있었다.
오늘 하루, 내가 내게 해준 유일한 다정함이
그 기초 크림 하나였다면,
그걸로도 괜찮다.
나를 챙기기 위한 최소한의 손길,
그것도 위로가 되니까.
피곤한 하루 끝에 거울을 다시 보며 생각한다.
“수고했어. 오늘도 잘 버텼어.”
화장이 없어도, 힘이 없어도,
내가 나를 알아봐 주는 것.
그게 진짜 회복의 시작이라는 걸
오늘 또 한 번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