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정해놓은 루틴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움직이지 못했다.
눈을 뜨자마자 알람을 끄고, 커튼도 열지 않은 채
불 꺼진 방 안에서 한참을 가만히 누워 있었다.
씻는 것도 미뤘고, 아침은 건너뛰었고,
매일 챙기던 쉐이크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가볍게라도 하려 했던 스트레칭,
오늘은 그런 것도 없었다.
단지 숨 쉬는 일 말고는,
어떤 것도 나의 루틴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 자신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은 그냥, 감정이 먼저
나를 끌고 가는 날이었던 것 같다.
점심 무렵,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앉아 작은 노트를 폈다.
할 일 목록 대신, 하고 싶지 않았던 감정들을 적었다.
“답답함, 무기력, 질투, 고독, 눈치, 그리고 잠.”
정리되지 않은 기분들을 나열하고,
그 옆에 살짝이라도 이유를 붙여보았다.
“누군가의 한 마디가 계속 마음에 남아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싫지만, 누구와도 있고 싶지 않다.”
“의욕 없는 내가 너무 싫은데, 움직일 힘도 없다.”
글씨가 삐뚤빼뚤하고, 문장은 완성되지 않아도
그렇게 감정을 적다 보면 이상하게 조금은 나아졌다.
마치 마음속 혼란이 눈에 보이는 단어가 되었고,
그 단어를 적는 순간, 나와 분리되는 느낌.
루틴이 무너졌던 오늘,
나는 감정을 정리함으로써 나를 붙잡았다.
감정이 흐트러지는 날에도,
그 감정을 기록할 수 있다면
나는 여전히 나를 지키고 있는 것 아닐까.
하루를 잘 살지 못했다고 느낄 때마다
이렇게 감정을 기록하는 방식으로라도
내가 내 하루의 일부를 다시 ‘나’에게 돌려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