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는 절대 변하지 않아요.

보통 남편의 아내로 사는 법 - 2

by 레이지마마

요즘 20~30대들 사이에선 이너피스(마음의 평화)라는 단어가 ‘힐링’ 이후 새롭게 떠오르는 키워드다. 이너피스의 수단으로 요가와 명상, 미니멀 라이프 등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꽤 많아졌다. 하지만 내 나이 또래인 40~50대들은 여전히 명상이라고 하면 사이비 종교 단체나 수염을 기르고 세상을 등지고 앉은 도인을 떠올린다. 하긴 나도 20년 전 코미디언 장두석이 명상 전도사가 되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남편에게 “부채 도사 장두석이 진짜 도사가 됐대.”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내가 명상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마음의 평화보다 성공에 대한 욕구 때문이었다. 나는 20대부터 줄곧 사업을 해왔고,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이나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는 편이다. 글로벌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도 강해서 영어로 진행하는 팟캐스트도 자주 듣는다. 롤모델로 삼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듣고, 따라 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그들처럼 글로벌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은 주로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혁신가들이고 그들의 공통점은 끊임없는 독서와 명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독서는 사고력과 통찰력을 넓혀주니 꼭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명상을 하면 뭐가 어떻게 좋아지는 건지 왜 그런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명상 예찬론자 오프라 윈프리가 추천하는 영혼을 위한 자기 계발서 (Spiritual Books) 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 접한 책이 에크하르트 톨레의 Power of Now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와 New Earth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다. 두 권의 책을 계기로 내 삶의 방향은 180도 바뀌었다. 늘 밖으로만 향해있던 시선을 내 안으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변화로 가장 혜택을 보고 있는 건 물론 나 자신이지만, 두 번째 수혜자는 남편이다. 마누라의 불만과 짜증이 줄어드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며 본인도 인정하는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명상을 하자고 하거나, 명상에 관한 약간의 설명이라도 할라치면 그는 하품을 참느라 눈물을 글썽이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쓰윽 피한다.


남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면’ ‘영혼’ ‘명상’ 같은 단어에 부담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방금 A4 용지 한 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썼다가 지웠다. 명상 얘기를 시작하니 할 말이 실타래처럼 꼬리를 물고 튀어나와 스스로를 자제하지 못했고, 화장실에 다녀와 썼던 글을 다시 읽자니 아차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이끌어 준 가장 큰 변화의 축은 ‘‘내 마음을 고요히 바라보는 시간’ - 바로 명상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앞으로도 종종 이 얘기를 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예를 들어, 1편에서 묘사했던 (상황을 멋대로 왜곡하여 드라마를 쓰고 희생자를 자처하는) 습성은 고요히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없었더라면 알아차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예전의 나라면 함께 명상을 하자는데 하품을 하는 남편을 언짢아했을 것이다. '왜 당신은 자기 삶에 그렇게 무책임해? 조금이라도 변화하고 싶은 의지가 있기는 한 거야?' 하고 말로든, 눈빛으로든 비난했을 것이다.


이제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상대방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교회 다니라고 집요하게 전도하는 분들 덕분에 내가 얼마나 교회를 멀리하게 되었던가. 나는 그저 내가 겪은 것들, 깨닫게 된 것들을 이야기할 뿐. 이 글을 읽는 분들께 행복해지려면 명상을 하시라마라 강요할 의도가 전혀 없다. 다만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따로 페이지를 할애해 언젠가 명상에 관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쓸 생각이다.


굳이 명상 따위하지 않아도,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집착을 내려놓게 되지 않나요?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 것이다.


우선, ‘집착을 내려놓는 것’과 ‘체념하는 것’의 뉘앙스 차이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방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기심과 욕심을 버린다는 의미다. 그것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자발적인 마음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집착을 내려놓으면 일단 내 마음이 편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상대에게도 전달되면서 관계가 훨씬 원만해진다. 그에 반해 체념은 어쩔 수 없는 포기에 가깝다. 상대를 여전히 인정할 수는 없지만, 싸울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아서 전의를 상실하는 것이다. 체념한 부부는 화를 내거나 잔소리는 하지 않지만 일상적인 대화도 잘 하지 않는다. 한숨을 쉬고 냉랭하게 대하는 방식으로 서로에게 계속 상처를 준다.


나이가 들면 자동으로 집착을 내려놓게 될 것 같지만, 주변 어르신들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멀리 갈 것도 없이 70대 중반인 우리 친정엄마는 아빠에게 똑같은 비난을 50년째 반복하고 계신다. 네 아빠는 게으르다. 사교성이 없어서 맨날 똑같은 사람만 만난다. 담배 냄새 때문에 못 살겠다. 밤에 잠 안 온다고 부스럭대면서, 낮에 꼭 저렇게 잔다 등등.


엄마도 모르실 리 없다. 아무리 얘기해봤자 입만 아프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렇게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화병이 나서 살 수가 없다는 엄마에게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빠가 어떤 방식으로 엄마의 속을 썩여왔는지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내가 대신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을 해 줄 수도 있을 만큼 그 입장이 이해는 된다. 그렇지만, 지나간 과거를 반복해서 들추어내고, 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에만 조명을 비춰 당신은 그런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는 것이 도대체 엄마의 삶에 어떤 유익을 줄까? 가끔은 엄마가 아빠에게 '당신은 그런 사람이니 절대 변할 수 없어. 변하면 안 돼.'라고 최면을 거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속 썩인 아빠는 그냥 두고 잔소리하는 엄마에게만 뭐라고 해서 미안하다. 그러고 보니, 노력하지 않는 남편들에겐 관대하면서, 왜 여자들에게만 명상을 하라느니 자신을 들여다보라느니 잔소리를 하는지 따져 묻고 싶은 분들도 계실 듯하다.


이유는 나 역시 보통 남편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맞장구치며 함께 신세 한탄하는 옆집 아줌마 역할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따뜻한 공감과 위로는 맘카페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지 않은가. 나는 과거의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젊은 아내들에게 진심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 반복되는 부부싸움에서 벗어나 가정에 평화를 불러들이고 싶다면, 남편을 붙잡고 똑같은 실랑이를 반복하는 대신 내 생각의 패턴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남편이라면 아내를 탓하는 대신 본인의 생각을 바꾸셔야 한다. 내가 남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하루빨리 인정해야, 내 행동 노선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헤어지던지, 최선을 다해서 행복하던지.


헤어지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면, 행복해지기로 단단히 마음먹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 글이 행복으로 가는 여러분의 여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정말 기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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