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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Sep 25. 2022

꿈은 얼떨결에 이루어진다.

바다가 보이는 작업실

우리 가족은 영종도에 산다. 제주도에도 집과 사업장이 있어서 가끔 왔다 갔다 하지만, 주로 사는 곳은 아이 학교가 있는 영종도다. 제주도로 이사하기 전에, 영종도에 1년 정도 살았는데 여러모로 살기가 좋아 양가 부모님을 이 곳으로 모셨었다. 그래 놓고 우리는 제주도로 호주로 떠돌다가, 부모님이 많이 연로해지셔서 올봄 이곳으로 다시 이사를 했다.


제주도에 살 때는 바다 뷰에 대한 로망이 없었다.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그림 같은 바다를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데, 굳이 바닷가에 집을 얻어 해풍의 눅눅함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바다가 보이는 별장을 꿈꾸기 시작했다. 얼마 전 올린 글 <하와이 우리 집>에 내 꿈이 매우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영종도에도 바다가 있다. 서해안답게 밀물 때는 반이 갯벌이지만 그래도 바다는 바다다. 당장 땅을 사서 집을 지을 수 있는 형편은 아니지만, 바다가 보이는 곳에 고요한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갔다.


매일 아침 여명에 붉게 물든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빨래와 설거지가 눈에 밟혀 자꾸 일이 끊기는 일이 없도록, 출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늘 그렇듯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 간혹 내가 추진력이 강하고 사업 수완이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는 계획하거나 노력하지 않는 편이다. 천성이 게을러서 하기 싫은 일은 미루고 미루고 최대한 미룬다. 대신 '이거다' 싶은 일, '하고 싶은 일'은 앞 뒤 재지 않고 즉각 실천하는 편이다. 한 마디로 대책없이 즉흥적이라는 뜻이다.


세계적인 과학자이자 영성 지도자인 디팍 초프라 Deepak Chopra 박사는 우리의 삶을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인생의 일곱 가지 법칙을 이야기한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최소 노력의 법칙'이다. 요즘 키워드로 많이 등장하는 '애쓰지 않는 삶'의 초석이 된 이론인데, 적게 노력할수록 - 심지어 아무 노력을 안 할수록 - 우주는 우리의 삶을 풍요와 번영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원하는 씨앗을 땅에 심는 것이다. 그리고 그냥 내버려 두면 자연이 다 알아서 씨를 키운다. 비를 내리고 햇볕을 비춰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한다. 조바심을 내고,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한 우리는 자꾸 땅을 파헤치고, 필요 이상의 물을 주고, 옆 사람의 나무와 비교하여 쉽게 절망한다. 그래서 결국 꽃이 피기도 전에 땅을 밟고 자리를 떠나 버린다.


내버려 두면 자연이 다 알아서 키운다는, 이 '최소 노력의 법칙'이 게으른 나로서는 딱 맘에 들었다. 인생의 좋은 일은 늘 하고 싶은 일만 할 때, 애쓰지 않을 때 찾아오지 않았던가.


이 법칙을 또 한 번 입증하는 일이 최근에 있었다.


모처럼 우리 집에 놀러 오신 엄마에게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왔다는 '영종도 도깨비 도로'를 보여주겠다며 바닷가 길로 드라이브를 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영종도 하늘도시 우미린 1차 정문에서 구읍뱃터 쪽으로 운전을 하다 보면 전방에 엄청 커다란 건물이 하나 보인다. 이 건물은 앞으로 갈수록 점점 작아져 나중에는 아예 사라지는데, 바다 건너 멀리 보이는 그 건물의 실제 사이즈를 보고 나면 이게 정말 착시란 말인가? 하고 보는 사람마다 놀라게 된다. (나중에 기회 되면 꼭 와보시길. 엄청 신기하다.)


차를 바다 쪽으로 몰아서 가다 보니 새로 지은 호텔 건물 꼭대기의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 남편과 가 봤는데 뷰가 정말 기가 막혔더래서, '커피 한 잔 할까?' 하며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세상에서 커피 사 먹는 돈을 제일 아까워하는 울 엄마는 '집 놔두고 여긴 뭐하러 왔냐며' 손사래를 쳤다. 그냥 가기 아까웠던 나는 온 김에 이곳의 객실 구조를 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병)


로비에 올라가 3개월쯤 머무를 방을 찾는다고 하니 직원은 흔쾌히 키 하나를 건네주었다. 침대로 꽉 채워져 발 디딜 틈이 없는 공간을 둘러보고, 장기 투숙 객실에서는 바다를 볼 수 없다는 말에 (진짜 계약할 것도 아닌데) 아쉬워했다. 방마다 주방이 딸려 있는데, 취사 공간이 너무 작고 테라스가 없어서 답답했다. 바로 옆에 방마다 테라스가 있는 건물이 보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다른 곳도 보고 갈까?


나 못지않게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엄마는, 지나오는 길에 문 연 부동산을 하나 봤다며 아예 매매나 임대 문의를 해 보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계획에도 없이 바다 뷰가 나오는 생활형 숙박시설 서너 군데를 돌며 매매와 임대 시세를 파악하게 된 것이다.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더더욱 내 공간을 갖고 싶어졌다. 원룸 하나를 임대해서 작업실로 쓸까?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일을 하고, 글을 쓰고, 요가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우리가 그럴 형편이 되나? 부모님이 연로하시니 매달 고정 지출은 늘어만 가는데...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몸은 다음 날 아침 또다시 부동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무지 거부할 수 없는 뷰를 가진 신축 레지던스의 17층 객실 하나와 도무지 거부할 수 없는 가격대의 급매물 하나를 발견했다.


커피값이 아까워 카페도 안 가는 우리 엄마는 부동산    구입 문제에서 만큼은 참 과감하다. 돈이 부족하면 빌려주겠다고까지 하며 옆에서 자꾸 펌프질을 하셨다. 전날 돌아다니며 다른 건물의 객실 내부와 시세를 알아봤기에 좋은 가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결국 대책없이 하나는 매입, 하나는 임대를 해 버렸다.



그렇게 얼떨결에 나는 꿈에 그리던 바다가 보이는 작업실을 갖게 됐다. 하지만, 온전히 나 혼자 점유하기엔 아직 사치이기에 주말엔 숙소로 운영할 것이다. 생활숙박시설로 된 건물이라 주소지별로 개별 사업자를 내야 한다고 해서 사업자 등록도 했다. 일이 이렇게 되니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1인 여행자의 방 - 고요한 스테이

 

온종일 틀어박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 혼자 여행할 때 모든 게 2인 기준으로 세팅된 숙소는 얼마나 쓸쓸했던가. 철저히 1인용으로 만들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추레하지 않도록 최고급 매트리스와 침구, 베개, 음질이 좋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놓아두겠다. 오래 앉아 책을 보거나 멍 때릴 수 있는 1인용 안락의자를 사서, 바다가 보이는 창 옆에 둘 것이다.


친환경 요가 매트를 비치하고, 유튜브 요가 클래스에 바로 접속할 수 있는 QR 코드를 줄 것이다. 이러려고 내가 엄청 고퀄로 요가 유튜브도 제작해 놨지! (PPL ‘요가 레인저스'입니다!!!!)


좋은 차와 다기 세트도 비치해 두어야겠다. 추천하고 싶은 인생 책들에 밑줄을 그어 침대 맡 테이블에 놓아두고, 명상 방석도 준비해야지.



바다를 보며 혼자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간 것도 좋지만, 내 취향이 듬뿍 담긴 것들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 기쁘다.


간절한 꿈도 아니었는데, 상상하니 이루어져버렸다. 얼떨결에. 순식간에.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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