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희 Jul 08. 2020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만

poem


이 어묵탕을 먹으라고 남겨둔 건지,

버리고 설거지하라고 남겨둔 건지

묻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욱하고 일어날 때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

나 자신에게

속삭입니다.



남편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국물을 맛있게 해치웠을 뿐.

남겨진 건더기를 보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뇌의 회로가 거기서 잠시

멈춰서 일뿐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를 함부로 여겨서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일부러 나를 불쾌하게 하기 위해

의도를 갖고 어묵탕을

저따위로 남기진 않았을 거야.

(호흡 호흡.

앙다문 어금니에 힘을 빼세요.)



대수로운 일도 아닌데

하하 웃으며 넘어가는 것이

내 마음도 편하지.

반복되는 행동이 불쾌하다면

따져 묻기보다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가르쳐주면 돼.


“음식을 먹다가 애매하게 남으면

바로 버리고 설거지를 해 주세요."


“음식을 먹다가 애매하게 남으면

바로 버리고 설거지를 해 주세요. 부탁해요."


“음식을 먹다가 애매하게 남으면

바로 버리고 설거지를 해 주세요. 한번 더 부탁해요."


한 번에 통할 거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말고

나긋나긋 웃으면서

될 때까지 반복해.


남편은 예민한 중2 아들과 같아서

걸핏하면 삐지고

도리어 나만 피곤해진다고.


생각하면 분통 터지지만

어쩌겠어.

조금씩 고치고 매만져서

데리고 살아야지.



- 리즈 -


매거진의 이전글 남의 집 아이가 우리 집에서 피가 철철 나게 다쳤을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