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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Jul 12. 2021

진심으로 환영해, 남편 친구들!

성인군자가 된 요가녀

제주도 살이 2년 차쯤 되면 빈말이라도 ‘우리 집에 한 번 놀러 와’라는 말을 아끼게 된다. 진짜 오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숙소를 구하기 힘든 휴가철엔 평소 친하지도 않던 친구나 먼 친척들이 난데없이 안부를 묻는 일이 있는데, 자칫하면 매 주말마다 손님치레를 하느라 진이 빠질 수 있다.


2014년, 제주도 이주 초기에 우리 집은 파티 전문 게스트하우스를 방불케 했다. 사람 좋아하는 남편과 술 좋아하던 내가 번갈아가며 지인들을 초대했기 때문이다.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가족과 친구들이 놀러 왔고, 그때마다 나는 집을 치우고, 냉장고를 채우고, 이불과 수건을 빠느라 수선을 떨었다.


여행자들은 들뜬 마음으로 제주도를 찾는다. 더구나 모처럼의 휴가라면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의욕에 불탄다. 가보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것도 많고, 전원주택에 사는 친구네 집 마당에서 바베큐도 한 번쯤 해보고 싶어 한다. 제주도민이라면 뭐든 잘 알 거라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우리는 눈이 빠져라 도민 맛집, 여행지, 액티비티를 검색한다. (도민들도 도민 맛집을 네이*에서 검색한답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잠자리에 들게 하고, 마당에 잡초를 뽑고, 빨래를 개키고, 소파에 모로 누워 영화를 한 편보다 졸기도 하는 평온한 일상은 사라지고 여행자의 들뜬 기분과 왁자함으로 밤낮이 채워진다. 친구들이 음식 준비를 거들고, 청소도 함께하며 최대한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다들 떠나고 나면 큰 일을 치른 것처럼 에너지가 고갈됐다.


리조트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가고 푹 쉬었는데도 집에 돌아오면 여독이 남아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지인들이 떠나고 나면 나도 여행을 다녀온 듯 어수선하고 피곤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제주 1년 차에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나는 손님 초대를 꺼리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아주 편한 친구 외에는 빈말이라도 놀러 오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번에 제주도 가는 데 간 김에 얼굴 좀 보자.'는 오랜만에 연락 온 지인의 요구도 내키지 않으면 이러저러한 핑계로 거절했다.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고, 친구들과의 왁자한 시간을 늘 그리워하는 남편은 그런 나에게 섭섭함을 느꼈다. 친구들과 후배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싶지만 내 눈치가 보여 단념한 일도 여러 번 있었을 것이다.




지난주, 근 6년 만에 남편의 절친들이 제주도에서 모였다. 그 사이 우리 가족이 3년간 호주에 살다 온 이유도 있지만 다들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라 함께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기에, 남편은 매우 설레는 마음으로 이번 회합을 기대해왔다. 뭐라 한 것도 아닌데,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며 혼자 숙소를 알아보고 친구들과 수군수군 연락을 하며 계획을 짰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이런 상황을 심란해했을 것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다섯 명이 온다고? 주말에 잠깐이 아니라 4박 5일이라고? 하고 투덜댔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검색에 취약한 남편 대신 앞장서서 숙소를 알아봤을 것이다. 다 함께 갈만한 곳을 검색하고, 집에서 한 잔 할 경우를 대비해 한 바탕 청소를 하며 큰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남편은 괜히 죄짓는 기분이 들어 안절부절하며, 자주 오는 친구들도 아닌데 반갑게 맞아주지 않는 부인을 원망했겠지.


하지만 나는 달라졌다.


지랄 맞았던 성격의 나는 매사를 편하게 받아들이는 쪽으로 변화했다. 지인의 권유로 얼떨결에 시작하게 된 새벽 요가의 영향이라 확신한다.


한 가지 습관이 트리거(방아쇠)가 되어 삶이 점점 그쪽으로 끌려가듯이, 동트는 새벽의 기운을 받으며 하루 한 시간 호흡과 몸의 자극에 집중하는 새벽 요가는 언젠가부터 강력한 명상처럼 내 삶에 깊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45년 평생 온몸에 배어있던 걱정하는 버릇, 잘해야겠다는 조바심을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불안, 초조, 짜증 등의 감정은 이성으로 제어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부정적인 감정이 훅하고 올라오면 쉼 호흡을 하며 내 마음의 격동을 초연히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생각과 감정의 흐름을 조용히 관찰하고, 현재 이 순간으로 돌아와 온전히 머무는 것. 그것을 명상이라고 한다면, 나는 매 순간… 이를테면, 요가하는 순간. 설거지하는 순간. 차 마시는 순간. 아이와 대화하는 순간, 샤워하는 순간, 이 닦는 순간 등 일상의 순간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며 명상하듯이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아니 노력한다기보다, 그렇게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일까? 손님이 오면 한 바탕 소란을 떠느라 혼자 지치던 예전과 달리, 지난 주말 남편 친구들이 와 있는 4박 5일 내내 몸과 마음이 여유롭고 평화로웠다. 남편이 나를 여러모로 배려해 준 이유도 있지만, 미리 걱정하지 않겠다, 애쓰지 않고 살겠다 하는 내 마음의 결정이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든 듯하다.


지인들의 알찬 여행을 위해 일정을 계획하고, 맛집을 검색하고, 숙소를 정하는데 참견하고, 뭐든 함께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았다.


술자리에서 하하호호 웃고 떠들다가도, 잠시 쉬고 싶을 땐 한쪽으로 물러나 책을 뒤적거리고, 유유자적 차를 마시며 나의 시간을 온전히 즐겼다.


바베큐를 하고 싶다고 하면 '모기 엄청 많을 시간인데, 에어컨 나오는 식당에서 먹는 게 편하지 않겠어?'하고 주장을 보태 일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고 잠자코 대세를 따랐다. 함께 장을 보러 가면, '우리 집에 쌈장 있어. 햇반은 왜사? 내가 쌀 가져갈 테니까 얼른 밥솥에 앉히지 뭐.' 하며 나서고 챙기느라 공연히 진을 빼지 않았다.

구워주는 고기를 맛있게 먹으면 그 뿐

전 날 늦어진 술자리 탓에 늦잠을 자고 싶어 하는 친구를 억지로 깨워 '아침 7시에 오름 가기로 했잖아!' 하며 안달하지 않고, 가고 싶은 사람끼리만 함께 동네 오름과 산책로를 걸었다.


그들이 족구를 하고 물회를 먹는 동안 나는 집에서 책을 읽고, 병아리콩을 삶고, 낮잠을 잤다. 괜히 먼 곳을 찾아 헤매지 않고, 평소에 자주 가는 동네 방파제에 앉아 밤바다를 안주삼아 캔맥주를 마시고 음악을 들었다.


일정을 미리 계획해 봤자 어차피 그대로 되지 않는다. 그날그날의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흘러가는 대로 지내고, 그 순간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모두가 함께 단체 행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니 모든 게 편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잘 대접해서 보내려고 노력하지 않으니 손님치레도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투덜거리고 힘들었던 것은 제주도 사는 지인네 집에 놀러 오고 싶어 하는 그들 탓이 아니라, 내 페이스대로 모든 것을 끌고 가려 했던 내 탓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요가로 인해

남편 친구들의 제주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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