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희 Aug 03. 2021

어쩌다 새벽 요가


요가와의 첫 만남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출산 후 빠지지 않는 살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무렵 핑클의 덩치를 담당하고 있던 옥주현이 호리호리한 자태를 뽐내며 요가 전도사가 되어 나타났다. 그녀의 변신은 많은 여성들을 요가의 세계로 이끌었고, 나도 그중 한 명이 됐다.


뭐든 의욕이 앞서는 나는 기왕이면 땀이 쏙 빠지게 해야 살이 더 잘 빠지지 않겠냐며 핫 요가원에 등록했다. 일주일쯤 다녀보니 살은 안 빠지고, 땀과 함께 기운만 쏙 빠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갈 때마다 숨을 헉헉대며 애를 쓰니, 요가원에 가는 시간이 힘들게 느껴졌다. 그래서 요가를 그만두어야 할 이런저런 핑계를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급격한 수분 손실로 인한 피부 노화가 염려된다.' 같은 것. 물을 마셔서 수분을 보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수분 손실을 막기 위해 핫요가를 그만두겠다는 얼토당토 한 이유를 들어가며 한 달 핫요가 수강권을 일주일 만에 날렸다.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시작해야 할 다양한 이유를 들어 회원권을 끊어놓고, 일주일쯤 지나면 그만둬야 할 이유를 요리조리 생각해내는. 게으른 합리화의 귀재. 작심삼일의 대표주자. 다이어트와 요요, 의욕과 우울을 반복하며, 헬스클럽과 요가원과 필라테스 센터의 불로소득을 돕는 자. 그래 놓고 1년 회원권 안 끊기를 천만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긍정적이긴 한데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는.




그러던 내가 어언 6개월 5일째 새벽 요가 클래스에 다니고 있다. 호주에서 3년을 살다 보니 자연히 아침형 인간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매일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나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요가원을 다닌다는 것은 6개월 7일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집을 운영하는 우리 회사는 매일 아침 엄마들을 위한 요가와 명상 클래스를 운영한다. 호주에서 귀국해 자가격리를 마치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요가 수업에 참여하다 보니 내 골반과 허리가 무척 불균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만성적인 허리 통증, 두통과 체기를 동반한 거북목 증상, 걸음걸이 비대칭으로 인한 발 근육통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애를 두 명 나은 40대 중반이니 그 정도 쑤시고 아픈 것쯤이야 감수하고 살아야 하지 않나 싶었는데, 내 몸을 유심히 지켜보시던 요가 선생님이 새벽 요가를 나와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삼양동에 새벽 다섯 시 반에 수업을 하는 요가원이 있는데 눈 딱 감고 세 달만 다녀보면 삶에 큰 변화가 있을 거라 하셨다. 왜 하필 꼭두새벽에 요가를 하시는 건지 물으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요가를 새벽에 하면 좋은 이유


첫째. 빠질 핑계가 없다. 이른 아침에 누굴 만나거나 꼭 해야 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 요가를 끝내고 돌아와도 아이들은 여전히 자고 있을 시간이다.


둘째. 일찍 자게 된다. 밤 아홉 시쯤 되면 슬슬 졸음이 몰려온다. (단, 낮잠을 자면 안 됨)


셋째. 야식을 끊게 된다. 배가 더부룩한 상태로 자면 아침에 요가를 하기 힘드니 저녁은 7시 이전 간단히 먹는 패턴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넷째. 해가 떠 오를 때 하는 요가는 그 에너지부터가 다르다.


‘그대로만 된다면 이거 살은 무조건 빠지겠는데?’

귀가 얇고 의욕이 앞서는 나는 "저도 나갈게요."라는 말을 내뱉어버렸다. ‘뱉은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 되자’라는 새해 각오를 다진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말이다.




1월은 밤이 길다. 알람 소리를 듣고 눈을 떴지만 창밖은 칠흑같이 어둡다. 잠든 지 얼마 된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아침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오늘만큼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다. 합리화 모드가 발동한다.


몸이 쑤시고 아프다. 이 상태로 요가를 하다가 몸살이라도 나면 동료들과 가족들에게 민폐가 될 텐데?

하지만 몸이 쑤시고 아픈 게 하루 이틀 일인가? 골반이 불균형해서 여기저기 아픈 것이니 3개월만 새벽 요가를 해 보세요.'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스쳐 지나간다.


피로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 같은데? 한 시간은 더 자야 오늘 하루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 듯! ‘네시에 일어나나 여덟 시에 일어나나 일어나기 싫은 건 똑같아요.'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명언이라며 맞장구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렇게 졸릴 때 운전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정말 큰일 아닌가? 꿈과 상상 그 어딘가에서 시답잖은 핑계를 대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본다. 전라도가 고향인 우리 엄마가 딱 이런 경우에 할 법한 말이 떠올랐다. '참 든적스럽다.'


눈이 반은 감긴 채로 욕실에 들어가 칫솔에 치약을 바른다. 칫솔을 입에 문채로 변기에 앉아 오줌을 눈다. 손을 씻고 칫솔질을 하며 거울을 본다. 어차피 마스크 쓸 거니까, 세수는 하지 말아야지. 이빨을 다 닦고 나면 슬슬 정신이 돌아온다. 제정신이 되면 후딱 세수를 하기도 하고, 여전히 안 하기도 한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습관적으로 냉장고를 열어 출출한 속을 달랠 요깃거리를 찾는다. 아차! 요가는 공복으로 하는 운동이지!


나 자신의 유혹을 뿌리치고 죽을 둥 살 둥 일단 집을 나서면, 그다음부터는 안개 걷히듯 뿌듯한 만족감이 싸악 번진다. 아무도 없는 새벽길. 삶의 진정한 승자가 된 기분. 누군가 나에게 박카스를 건네줘야 할 것 같은 기분.


새벽 요가가 삶에 미치는 여파가 큰 것은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생활의 패턴, 생각의 패턴이 싸악 정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기 싫고, 힘들고, 왜 하나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하는 거. 일찍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 양치를 하고, 변기에 앉고, 따뜻한 물을 한잔 마시고, 공복에 집을 나서 한 시간 동안 땀을 흘리는 단순하지만 파워풀한 루틴을 매일 반복하는 거.  


두 아이를 키우고 사업을 하면서 밤에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나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하지만 그냥 한다. 몸을 주섬주섬 일으켜 어떻게든 집을 나서면. 한 시간 후 흠뻑 땀 흘린 나는 “역시 오기를 잘했어! 오늘도 해 냈어!” 하며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리라는 걸 알기에.


인생은 일시적인 노력이나 운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반복되는 매일의 루틴이 모여 그 방향을 튼다는 사실을 6개월 차인 요즘 부쩍 실감하고 있다.


- 리즈 -




매거진의 이전글 요가원에는 텃세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