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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Dec 15. 2021

스티브 잡스도 나 처럼 외로웠을까?

한때 나는 모든 것이 못마땅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 배우가 화장을 지우지 않은 채 잠드는 것이 못 마땅했고, 어느샌가 시금치를 빼버린 동네 김밥집이 변했다며 투덜댔다.  


남편이 잠을 너무 많이 자면 신생아냐며 구박했고, 오은영 박사의 방송에 별 흥미를 못 느끼는 것을 보며 애는 나만 키우냐고 불평했다.


나도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서 몇 시간째 휴대폰을 들고 있는 아이들에게 화를 냈다.


산에서 크게 트로트 음악을 듣거나 떠드는 사람들을, 식당에서 뛰거나 크게 떠드는 아이들의 부모를 속으로 욕했다.


나의 방식이 옳고 상대방은 틀리다고 믿었다.

내가 화나는 이유는 모두 다 남들 때문이었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 남편이나 아이들 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늘 짜증이 나 있었고, 어딘가 모르게 긴장해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완벽 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괴팍하기로 소문난 스티브 잡스를 롤 모델 삼아 나는 옳고 당신들이 허투루 사는 것이니 고쳐야 한다고 조언하고 충고했다.


하지만 남들에게 나는 그저

예민한 아내

예민한 엄마

예민한 직장 상사일 뿐이었다.


늘 가르치려고 드는 사람을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점점 외로워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스티브 잡스도 나처럼 외로웠을 거야.'


매일 요동치는 감정과 외로움, 불안함은 마음에 흙탕물을 만들었다. 그것은 시야를 뿌옇게 만들고, 삶의 길을 잃고 방황하게 만든다.


방황이 극에 달할 때쯤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덕분에 나는 남편과 떨어져 외국에서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신세가 되었다.


긴 시간을 혼자 보내려면, 나 자신과 친해지는 수밖에 없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난 후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매일 30분씩 뒷마당에 앉아 명상을 했다. 늘 남들을 향해 있던 시선이 나 자신에게로 조금씩 돌아왔다. 고요한 시간을 통해 마음의 흙탕물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단지 조용히 앉아 내 숨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화선지에 똑떨어진 물감이 싸악 번지듯 조금씩 삶의 곳곳에서 행복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알아채지 못하던 수 없이 많은 감사한 일들. 내가 누리고 있던 엄청난 행운과 행복들이 여기저기서 퐁퐁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침에 나가 무사히 집에 들어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반갑고, 비가 쏟아지는 날엔 아늑한 집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남편과 수시로 영상 통화할 수 있게 해주는 카톡에 감사하고, 맛있는 포도를 수확해 준 농부에게, 그것을 사 먹을 수 있도록 내 대신 일해주는 직원들에게, 우리 회사의 고객들에게, 크게 아픈 곳 없이 노년을 보내고 계시는 부모님들께, 시금치 없는 김밥이라도 맛있게 씹을 수 있게 해 주는 내 성한 이빨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우리는 늘 잃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는다. 나에게 주어진 이 모든 풍요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또 감사할 선물이라는 사실을 잃기 전에 알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제 나는 투덜거리지 않는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삶에 저항하지 않는다. 왼팔이 부러지면, 그래도 오른팔이 성해서 얼마나 다행이야라고 말하고 오른팔이 부러지면, 덕분에 왼손도 잘 쓰게 되겠네라고 말하며 주어진 일을 반갑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마음만 살짝 바꿨을 뿐인데, 온 세상이 내 편이 된 것 같다.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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