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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아침 Oct 04. 2024

안 하는 편을 택하는 남자

- written by C

2010년, 제주에서 살기로 했을 때, 우리 부부에게는 차가 아니라 면허가 없었다. 무슨 대단한 환경론자의 사명을 띤 건 아니었지만, 더러는 그런 대의에 기댈 때도 있었다. 솔직히 그보다는 21세기 운전면허 미소지자로서의 허세가 더 컸다. 희소성을 갖춘 자기만족이랄까.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차 없는 제주 생활을 그럭저럭 해내고 있었다. 걸을 수 있을 때는 걷고, 걸을 수 없을 때는 바구니가 달린 귀여운 자전거를 탔다. 그것도 안 되면 버스나 택시를 탔다.
 
 나는 고질적인 편도선염 환자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호되게 앓는다. 제주에서 첫 봄을 맞을 때, 그때 정말 지독하게 아팠다. 어느 날 찌뿌둥한 상태로 잠이 들었는데, 순식간에 온몸에 열이 나고 모든 근육이 자근자근 아프기 시작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앓는 소리가 절로 새어나왔지만, 깊게 잠든 남편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옆구리를 찔러 그를 깨웠다. 그는 한 번에 깨어나는 대신 벅벅벅 몸을 긁었다. 그러고는 비몽사몽으로 곰발바닥 같은 손을 뻗어 땀 흘리는 내 얼굴을 대충 쓰다듬었다. 아파 죽겠는 와중에, 이 손으로 조금 전에 발이라도 긁었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그는 심각한 무좀 환자였다. 지금은 꾸준한 병원 치료 덕에 다 나았지만, 당시 그의 발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남편의 손길을 피해 몸을 뒤채다가 결국 울음이 터졌다. 너무 아프다고! 그러니 제발 나를 만지지 말라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남편은 우왕좌왕했다. 나는 다시 울먹였다. 응급실에 가야겠어! 그 다음이 문제였다. 뭘 타고 가나.
 
 옷을 주섬주섬 입고 기다시피 대문을 나서서 캄캄한 대로변에 섰다. 밤보다 내 인생이 더 캄캄했다. 나를 응급실로 데려다 줄 차가 한 대도 없었던 것이다. 아직 카카오택시가 없던 때였다. 콜택시 번호 한두 개쯤 비상약처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걸 그날에야 알았다. 새벽바람은 마치 한겨울 파도처럼 휘몰아쳤다. 이대로 죽겠구나 싶었다. 차라리 길바닥에 눕고 싶었다. 남편이 하는 말은 쓸데없었다. “좀만 더 버텨 봐.”
 
 결국 버티지 못하고 이듬해 면허를 땄다. 제주에서 살려면 차가 필요하다는 걸 인정했다. 결국 세상에 많고 많은 차 중에 우리 차도 보태기로 했다. 함께 자동차 학원에 등록하고, 수많은 대학생 커플들 사이에서 가장 늙은 커플로 어찌어찌 면허를 땄다. 남편은 곧장 운전을 했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더니 같은 초보 처지에 나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이내 내게  ‘운전불가’를 선고했다. 어이없었지만, 내심 나쁘지 않았다. 운전을 하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실려 가는 게 더 적성에 맞았다.
 
 그 후로 운전은 오로지 남편 몫이었다. 그런데 그 역시 면허가 생겼다고 운전에 재미를 느끼는 쪽은 아니었다. 어떤 날에는, 자동차는 소유의식에 지배당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기계라며 허튼 소리를 해댔다. 응? 백화점 백 바퀴 도는 사람이 할 소리야? 다른 날에는, 운전은 나도 못 믿고 타인도 못 믿는, 불신지옥의 레이스라고 투덜거렸다. 이렇게 갖가지 이유로 우리 차는 달리는 날보다 서 있는 날이 많았다.
 
 우리 부부는 허먼 멜빌의 짧은 소설 <필경사 바틀비>를 좋아한다. 바틀비의 입버릇 같은 대사를 사랑한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월스트리트가의 묵묵한 직장인, 그렇지만 어떤 일은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다고 반복적으로 말함으로써 모두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남자, 바틀비. 그의 소극적 저항 언어가 견고한 자본주의에 실금 하나 낼까말까 할지언정, 우리는 그를 응원한다. 우리 두 삶의 태도 곳곳에도 바틀비가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바람은 어느 날 이상한 방식으로 현실이 됐다, 남편이 ‘바틀비 되기-운전편’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바람 부는 날,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이른 새벽 그리고 늦은 밤에는, 운전을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 


동의했다. 아니, 동의 당했다. 당사자가 안 하겠다는데! 바틀비로 살겠다는데!
 
 어느 해 겨울, 다시 편도선이 극심한 말썽을 피웠다. 병원에 오래 다녔지만 낫지 않았다. 친구가 자기가 다니는 용한 병원이 신제주에 있다며, 근처 마트 가는 길에 태워다 준다고 했다. 한참 순서를 기다리느라 기절 직전이었는데, 짧은 진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니 저녁 8시였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데리러 와 줘.” 그가 말했다. “이 밤에 신제주는 못 갈 것 같아.”
 
 맞다. 그 사이에 운전 불가 원칙이 하나가 더 생겼지. 신제주처럼 복잡한 곳에는 가지 않는다! 젠장, 그때 나도 동의했더랬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겨울밤 신제주'에는 그가 운전하지 않을 이유가 세 가지나 됐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럴 때는 와야 할 거 아냐! 마침 카카오택시가 막 도입될 무렵이었다. 나는 외국보다 멀게 느껴지는(우리는 ‘구제주’ 생활자다) 신제주 어느 대로에서, 벌벌 떨어가며 어플을 깔고 택시를 호출했다. 새벽 파도 같은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지도를 따라 내게로 접근해 오는 택시가 보였다. 목적지를 새로 입력하고 싶었다. ‘바틀비가 없는 곳’으로.
 
 한동안 우리는 차 없이 살았다. 정확히 말하면,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지내는 친구의 차를 셰어해서 살았다. 차는 대부분 서 있었다. 이동할 때는 주로 걷거나,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탄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나는 이런 이동 방식에 기꺼이 동의한다. 대형 마트에 가야 할 때는 동네 후배 차를 얻어 탄다. 그럴 때는 적당히 우정에 기대는 바틀비다.
 
 남편은 조기 축구에 미친 사내다. 조기 축구 동호회는 제법 조직적이어서 ‘미깡철 나라시 봉고’처럼 픽업 차량을 운행하는 회원이 있다. 축구를 하러 갈 때 남편은 그 픽업 차량에 실려 간다. 그런데 불가피한 사정으로 차량 운행이 없는 날도 있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그런 날에, 남편은 축구 안 하는 편을 택하지 않는다. 세워둔 차를 타고 조용히 시동을 건다. 그걸 타고 저 머나먼 신제주로 간다. 나이 든 슛돌이가 바틀비를 이긴다. 내가 동의했느냐고? 그럴 리가! 치사한 선택형 바틀비! 자책골이나 왕창 넣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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