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으른아침 Oct 04. 2024

일요일의 조기축구 ‘공’화국에 관하여

- written by C

일요일 아침 9시부터 11시 반까지는 남편의 조기축구 타임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축구 동영상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 때도 있고, 다른 멤버들보다 조금 더 일찍 나가 몸을 풀 때도 있다. 잘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참 열심히는 한다. 


한동안 생업에 지쳐 조기축구에 나가지 못하던 때도 있긴 했다. 나는 그때 중년의 남자가 어떻게 불행하게 늙어 가는지를 다룬 일상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줄 알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들어가다가 다시 공을 차러 나갔을 때 그는 정말 말도 못하게 행복해 했다. 한 순간에 젊어졌다. 


반면 나의 관심은 축구를 끝낸 그가 점심 식사 시간에 늦지 않게 해장국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데에 있다. 일요일의 식사는 가족과 함께! 아직 아이들이 어렸을 때였으므로, 무적의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국밥집에 모여서 다 같이 식사를 하는 멤버들을 두고 분주하게 움직여 귀가한다. 


나는 애써 그의 조기축구회에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지만, 그가 목구멍에 피 냄새가 차오를 때까지 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쯤은 안다. 언젠가 남편은 하루에 두 게임을 뛰는 다른 멤버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일요일은 물론이고 토요일부터 공을 차는 멤버들 이야기도 덧붙였다. 나는 짐짓 못들은 척 했다. 남편은 며칠 더 그 얘기를 하다가 입을 닫았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내가 2018년에 가장 열심히 한 일 중 하나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본 거였다. 여러 번 보았고, 볼 때마다 각기 다른 캐릭터의 사연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중 하나가 바로 조기축구였다. 주인공 박동훈의 제1소속은 후계동 조기축구회였다. 거의 원가족 수준으로 소속되어 있다. 후계동 사람들은 생의 대부분을 함께한 동네친구들이다. 그들은 축구로 아침을 시작하여 밤은 술로 마무리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형제이고, 형제들의 형제들이었다. 


남편의 현실 축구팀은, 드라마 속 조기축구회보다 더 복잡했다. 일단 이주노동자 멤버들이 있었으므로 국적이 다양했고, 사는 곳이 제각각이었다. 드라마에 비해 현실은 훨씬 더 불균질한 법이다. 조기축구회라는 키워드만 놓고 본다면 드라마보다 남편의 조기축구회가 훨씬 더 흥미롭고 신기했다. 나이, 국경, 종교, 직업이 뒤섞여 있고, 친교의 벽이 없었다. 드라마 속 박동훈의 조기축구회와 다르게 일상의 공유와 분리가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렇다고 그들 사이의 감정적 얽힘까지 없진 않을 거다. 내가 대충 흘려 들은 것만 해도, 치고  받기 직전까지 싸웠다는 이야기가 여러 번 있었다. 공을 차는 남자들도 싸우고 삐지고 씩씩거리며 달래주고 끝내 해소되지 않은 앙금을 가진 채 다시 만난다. 뜨거운 화해의 포옹 없이 다시 모여 또 찬다. 또 싸운다. 일단 ‘공을 찬다’는 최소한의 기준선만 있다면 그냥 ‘공차는 친구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건대, 조기축구회 구성의 균질과 불균질에 대해서 논하는 건 그저 입의 일일 뿐이다. 발의 일은 전혀 다르다. 모든 경계를 초월하여 내가 찬 공을 그가 받을 수만 있다면 한데 엉켜 시큰한 땀 냄새를 기꺼이 공유한다. 그들 사이에 뜨거운 공기가 흐르고, 그 공기를 그들의 발이 가르고 또 가른다. 치열하고 둥근, 그리고 땀 냄새 나는 그 시큰한 근육질의 우정에는 문득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남편은 모르게 말이다. 


나의 심경이 어떻든, 그는 끝내 가고야 말 것이다. 모든 언어를 무력화하는 몸의 세계, 모든 종류의 에너지를 뒤섞어 각자의 현실을 절묘하게 패스해버리는 세계, 현실의 룰과 자신들만의 룰을 때로 거칠게 관통시키고 때로는 유연하게 조율하면서 한시적으로 열었다 닫는 미완의 주1회 공화국으로 말이다. 대한민국 아저씨 문화의 결정체로 밈화되는 뒷이야기쯤은 가볍게 패스해 버리고. 


p.s. 공화국 입국은 알아서 하고, 공화국에서 퇴장할 때는 해장국을 들고 오시라. 배고프다. 

이전 21화 안 하는 편을 택하는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