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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아침 Oct 04. 2024

남편을 실종신고 했다.

- written by C

겨울비가 내리는 어느 일요일, 점심 무렵부터 남편이 사라졌다. 자정이 가까워져 가는데 남편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결국 112에 실종신고를 했다.
 
 “남편이 집에서 낮 1시쯤에 나간 것 같은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핸드폰도 카드도 가져가지 않았어요. 예? 마지막 모습요? 방에서 낮잠 자고 있었어요. 술? 술은 일 년에 두세 번쯤 저랑 같이 만나는 친구들 모임 제외하고는 술 안 마셔요. 우울증요? 그런 건 없어요. 아픈 데요? 없어요. 오늘도 비 오는데 조기축구에 다녀왔어요.”
 
 112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만 해도 설마 안 들어올까 싶었다. 혹시 편지라도 있을까 싶어 침대 주변을 뒤져보았다. 비상금을 챙겨 나갔을까? 내가 진즉에 알고 있던 (그의 비밀스러운) 비상금 서랍을 열어보았다. 돈은 그대로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그는 내 전화번호 외에는, 심지어 아이들의 번호조차 외우지 못하는 사람이다. 식구들에게는 남편이 밖에서 누굴 좀 만나느라 늦는 모양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그는 핸드폰이 없으면 누구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이다.
 
 실종신고를 마치자 후배 K가 와주었다. 그의 차를 타고 별 의미 없이 집 근처를 돌아보았다. 병원 응급실마다 신원 미상의 환자가 들어왔는지 전화를 걸었다. 굉장히 희한한 말이지만, 이런 상황이야말로 무소식이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대범한 마음으로 남편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깊은 밤이었다.
 
 K의 차 안에 침묵만이 가득했다. K의 사이드미러에 무언가 비쳤다. 검은 후드 점퍼 차림의 사내였다. 우산을 달랑달랑 흔들면서 걸어오는 그의 걸음걸이가 너무나 익숙했다. 이런! 목구멍 아래로 욕을 삼켰다. 최고 난이도의 육아다.
 
 왜 집을 나갔을까. 가출 직전, 내가 점심을 준비하던 사이에 남편과 딸아이 사이에 이런 대화가 있었다고 한다.
 
 “아빠가 잘못했어.”
 
 “….”
 
 “미안해. 이제 안 그럴게.”
 
 “….”
 
 딸아이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남편은 아마 딸의 침묵을 보면서 알았을 거다. 해결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문제는 담배였다. 남편은 어마어마한 헤비스모커다. 성인이 된 후부터 지금까지 그는 무섭도록 줄담배를 피워 왔다.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직접 금연 스티커를 만들어 집안 곳곳에 붙여놓았더랬다. 틈만 나면 아빠에게 금연 약속을 받아냈다. 남편은 아이의 그런 행동을 그저 귀여워만 했다.
 
 아이는 아빠가 인생을 걸고 담배를 지켜온 남자라는 걸 몰랐다. 남편도 몰랐다. 그때부터 아이는 마음속에 아빠를 향한 투쟁력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던 걸. 고3이 되던 해 3월, 아이는 선언했다. 금연하지 않으면 아빠와 대화하지 않겠다!
 
 딸아이는 침묵시위의 대가다. 그때 무려 한 달 동안 아빠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남편은 몸이 달았다. 아침마다 모닝콜을 하고, 밤이면 학원에 데리러 가고, 맛있는 빵을 만들어 대령했지만 모든 회유책은 무력했다. 딸이 원하는 것은 ‘절대금연’이었다. ‘즉시금연’이었다. 남편은 자신을 잘 알았다. 그는 금연이 불가능한 존재였다. 결국 절충안을 제시했다.
 
 “아빠가 너무 오래 담배를 피워서 지금 당장은 어려워. 대신 하루 반 갑으로 줄일게. 약속할게.”
 
 협상 테이블에서도 딸의 침묵은 길었다. 내가 두 사람 사이의 중재자 노릇을 해야 했다.
 
 “이번에 기회를 주면 아빠도 점점 줄이게 될 거야. 믿어 보자.”
 
 한 달 간의 침묵시위 끝에 일일 흡연량 제한에 합의한 ‘담배협정’은 그렇게 일단락이 되는 듯했다. 그간 약속을 잘 지키던 남편이 알게 모르게 선을 넘을 넘다가 급기야는 며칠 전 하루 네 갑의 담배를 사들이기 전까지는. 그는 새벽 6시에 담배 두 갑을 샀는데, 저녁 8시에 다시 또 두 갑을 사놓고는 뻔뻔하게 발뺌을 했다. 그날 남편의 대답은 정말 가관이었다.
 
 “아니야. 아침에 산 거 담배 아니야. 어떤 미친놈이 하루에 담배를 네 갑이나 피워?!”
 
 그 ‘미친놈’은 참으로 쩨쩨했다. 남편은 이 모든 사태를 딸에게 홀라당 다 들켰다. 내가 일조했다. 편의점에 가서 결제 품목을 확인한 게 나였다. 물론 그가 하루에 네 갑을 피운 건 아니고, 미리 쟁여두느라 그렇게 된 것이었다. 사정이 어찌됐든, 결국 딸아이의 방문 앞에서 용서를 구했다. 딸은 용서하지 않았다. 딱 한 마디만 했을 뿐이다. 
 
 “대학 면접에 가지 않을래.”
 
 남편은 아마 모골이 송연했을지 모른다. 외모며 성격이며 자신을 꼭 빼닮은 딸아이가 제 아빠를 꺾을 수만 있다면 아마 진짜로 대학 따위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직감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귀엽다고 안아주며 넘어갈 수 없는 문제 앞에 선 그는, 인생 최초의 가출을 선택하고 말았다.
 
 나는 이 사건의 전말을 알고 나서 딱 한 마디를 물었다.
 
 “핸드폰은 왜 두고 나갔어? 그게 시위야?”
 
 “나가자마자 핸드폰이 없는 걸 알았지. 그렇다고 다시 들어갈 수는 없잖아. 그 당혹감을 당신이 알까?”
 
 아니, 나는 모른다. 알지 않을 작정이다. 그는 금연을 결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짐 자무쉬의 영화 <커피와 담배>에서 톰 웨이츠가 말했다. “담배를 끊어서 좋은 게 뭔지 알아? 이제 담배를 끊었으니 한 대쯤 피워도 괜찮다는 거지.”
 
 집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그의 어깨 위에는 톰 웨이츠가 살기 시작했을 것이다. 흥미진진하다. 당신 인생에도 ‘찐’으로 무서운 게 있긴 있구나. 얼렁뚱땅 승리할 수 없는 종류의 싸움을 시작하느라, 무조건 패잔병이 될 준비를 하느라 가출이 필요했구나. 그러한 정상을 참작하여 이번 가출에 대해서는 욕을 참아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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