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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아침 Oct 04. 2024

나무가 나한테 말을 걸어줄 것 같아!

- written by C


마삭줄에 관하여



가드닝은 몽땅 남편의 일이다. 그의 장래희망이 정원사다. 다음 생에 정원사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정원사로 살다 죽고 싶은 것이다.


나는 아직도 남편이 어떤 종류의 식물에 마음을 쏟는지 세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가 완벽한 상실감에 빠져 허우적대던 어떤 시기, 화분에 마음을 쏟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일단 마음을 쏟기 시작하면 그는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고 내달린다. 가드닝도 그랬다. 맹렬하게 흙을 팠고, 나무를 심었다. 누군가 자신의 나무에 대해서 귀 기울여주기만 하면 자기가 아는 만큼의 식물 이야기를 풀어놓곤 했다.


어떤 날은 새벽부터 마삭줄을 옮겨 심고는 내가 깨기를 기다렸다가 그것부터 보여준다. 나는 마삭줄이라는 나무를 남편에게서 처음 들었다. 실은 대부분의 나무 얘기를 그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배롱나무를 좋아하고, 금목서를 좋아하고, 능소화를 좋아한다.


남편은 곧잘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 구름이나 금이가 내 말을 알아 들을 거라는 기대가 없어.”


구름이와 금이는 우리가 키우는 진돗개와 리트리버다.


“그런데 언젠가 이 꽃나무들은 내게 말을 걸어줄 것 같아.”


그런 얘기를 할 때, 그는 현실의 사람 같지 않다.


“내가 하는 말이나 잘 들어줘.”

“당신은 나무가 아니잖아. 이 마삭줄은 백년은 족히 살았을 것 같아.”


남편의 목소리에 감탄이 가득하다.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백 년 뒤, 이백 년 뒤의 미래를  살게 될 가능성이 높은 생명체라는 뜻이기도 하다. 오랜 생애 누구도 해치지 않고, 도리어 끊임없는 성장으로 누군가를 감동시키는 것이 있다면 그건 인간이나 기술 따위가 아니라 이렇게 흙에서 자라는 것들이겠지. 그러니 언젠가 누군가는 저들의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


   

능소화에 관하여



제주살이를 시작하고 몇 해 동안 나는 이방인이기를 작정한 사람처럼 굴었다. 제주가 나를 환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스스로도 이곳의 삶을 환대하지 않았다. 섬은 아름답고 도도했다. 나 역시 굽히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일도 드물었다. 대신 바다 건너 저 먼 곳을 내다보았다. 내가 바라보는 방향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오일장에서 꽃을 사다 심었다.


“OOO이라는 꽃이야. 넝쿨식물이라서 담을 타고 넘을 거야. 아마 볼만 할 거야.”


흘려들었다. 애초에 꽃에 큰 감흥이 없는 사람이라 더 그랬을 거다. 이곳에 뿌리내리고 살 생각이 없는데 꽃이라니!


무심하게 두어 해 세월이 흘렀고, 어느 초여름 나는 좀 아득해졌다. 고개를 들어 담장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찔하게 피어난 능소화 무더기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능소화라는 꽃이야. 넝쿨식물이라서 담을 타고 넘을 거야. 아마 볼만 할 거야.”


아, 그때 말한 게 능소화였구나.


남편의 말은 옳았다. 실은 제법 볼 만한 정도를 넘어섰다. 늘 땅만 보고 걷다가 매일 아침 담장을 올려다보았다. 제주의 하늘이 매일 다른 빛깔로 아름답다는 걸 능소화로 알게 됐다. 능소화 덕분에 하늘을 보았고, 능소화 꽃잎과 나뭇잎이 살랑거리는 덕분에 바람을 보았다. 비가 오는 날은 마음이 시렸다. 담벼락 아래에 빨간 능소화들이 흐드러졌기 때문이다. 능소화는 시들어 떨어지지 않고 아름다운 채로 낙화해서 그때부터 새카맣게 죽어간다. 자존심까지도 아찔한 부류의 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동백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담벼락의 위, 아래로 그렇게 아찔한 것들이 만발해 있다는 사실이 나는 좋았다. 허공까지 관능적이게 만드는 기운이 능소화에게 있었다.


살고 싶은 대로 꼭 살아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일은 너무나 허다하다. 그런 게 인생이라는 걸 아주 천천히 깨닫고 그보다 더 천천히 용납하는 중이었는데, 능소화에게 마음을 빼앗긴 게 그 무렵이었다. 능소화가 아름답게 피어나서 살랑거리는 걸 먼저 보았는지, 낙화까지도 아찔한 능소화의 아름다움이 섬 생활에 마음을 다 열지 못한 나를 무장해제 시킨 게 먼저인지 따져 묻지 않기로 했다. 그냥 능소화가 큰 용기가 되었다고만 해도 괜찮았다.


   

마당에 관하여



마당이 있는 집에 사는 일은 좀 고단하다. 작은 공사라도 하게 되면 고통은 배가된다. 일거리의 규모가 애매하면 남에게 맡기기 쉽지 않다. 맡기는 입장에서는 일의 규모에 비해서 비용이 많이 들고, 일을 맡는 입장에서는 돈도 되지 않는데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며칠씩 다른 공사 현장을 비워야 한다. 날씨도 변수다. 공사를 할 만 하면 비가 오거나 눈이 온다. 그러면 공사를 하러 왔다가도 날 좋으면 다시 오겠다고 하고 돌아가 버린다. ‘날 좋으면’ 이라는 게 엄청난 함정이다. 그게 대체 언제인가요? 제주에서 날씨는 가장 고약한 변수다.


그래서 제주에서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는 건, 삽질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파스도 넉넉히 준비해두어야 한다. 봄이 오기 전 어느 늦겨울, 마당의 화단을 새로 정비하기로 했을 때 남편은 말했다. “내가 할게.”


그날 이후 남편은 매일 여섯시 반에 일어났다. 마당을 조금씩 파헤쳐 놓기 시작했다. 화단에 박혀 있던 무거운 경계석들과 크고 작은 돌멩이 더미들이 파헤쳐졌다. 나는 그 현장의 구경꾼이었다. 그저 커피나 끓일 뿐이었다.


어떤 날 아침, 남편은 커다란 돌을 하나 날랐다. 다음 날에는 파헤쳐진 구역을 가지런하고 평편하게 골랐다. 어제 옮긴 돌을 오늘 다른 자리로 옮겨 놓는 일도 자주 일어났고, 파낸 것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도 했다. 그건 직접 해보고 즉각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일이었다. 용역을 통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담배를 피면서 나무 한 그루를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이걸 딱 50센티만 옆으로 옮겨 심고 싶어.”

“꼭?”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나무 이름이 주목이야. 어릴 때 아버지가 옛날 집 마당에 심었던 나무인데, 그걸 여기로 데려왔지.”

“딱 50센티만 옮기면 돼?”


겨우 50센티인데! 그를 돕고 싶었다.


나중에 알았다. 내가 너무 얕봤다. 언 땅을 계속 파야 했고, 나무를 조금씩 옮겨야 했고, 모양을 바로 잡아야 했다. 나무를 옮기는 일은 가구를 옮기는 일과는 또 달라서 요령이 필요했고 힘이 아주 많이 들었고 한 번에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추억이 있는 것들, 뿌리를 내리는 것들, 그런 것들은 그대로 하나의 세상이었다. 보통 무거운 게 아니었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것들이 하나씩 둘씩 옮겨졌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다.


남편은 이른 아침부터 내가 깨어나길 기다렸다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봐봐. 여기 이 마당에서 나온 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재활용했어.”


남편은 매우 뿌듯해했고,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었다. 남들은 알지 못할 변화였다.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지만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마당에 원래 있던 것들이 그냥 마당에 계속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이 평범한 풍경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그는 지구를 후벼 팠다.


그가 노동을 하는 마당은 그의 생애 같았다. 혹은 한 사람의 생애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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