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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아침 Oct 13. 2024

나의 신화 3- 삼계탕은 기다림

나의 신화 3 - 삼계탕은 기다림


1983년 여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일 년 동안 할머니는 제주에 남고 나는 서울에 가서 살게 되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섬을 떠나 사는 꿈을 꾼다. 가 본 적 없는 육지를 사랑한다. 서울 꿈을 꾼다. 나는 서울에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바다 대신에 끝도 없이 기다란 기차선로를 보았다. 할머니와 함께 살던 곳에는 동네에 연못이 있었는데, 새로 살게 된 서울 동네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교회와 놀이터가 있었다.  


서울에 뭐가 있는지 알지 못했던 아이는, 자기가 꿈꾼 서울이 이 서울이 맞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꿈을 이룬 여덟 살에서 아홉 살 사이의 여자아이는 막상 밤이 되면 할머니 꿈을 꾸었다. 그리고 새벽에 공동주택의 계단에 앉아 있다가 이웃에게 발견되곤 했다. 몽유병이 나타난 것이다. 여자아이는 이웃에게 할머니한테 가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기억에 없는 일이었으므로, 어른들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일이 오래 갔던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수면장애의 일종인 몽유병은 성인보다는 아이들에게 잘 나타나고 커가면서 사라진다고 한다.


나는 몽유병이라는 방식으로 그리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일요일에는 친구들을 따라서 동네 교회에 다녔다. 그냥 가기만 하면 달콤새콤한 케찹을 묻힌 핫도그를 준다고 했다. 주일학교 선생님과 목사님은 다정했다. 하지만 이내 엄격해졌다. 검은 정장 차림의 목사님은 매번 예배시간 마다 성경을 가져 오지 않은 아이들을 불러일으켰다. 성경을 가져오지 않는 게 얼마나 큰 죄인지 열정적으로 설교했다. 처음에는 열 명 쯤, 그 다음 주에는 다섯 명 쯤, 맨 마지막 주에는 성경을 가져 오지 않은 아이가 딱 하나 남았다. 그게 나였다.


집에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핫도그가 맛있었고, 할머니랑 같이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목사님은 성경을 가져오지 않은 어린 양은 예배를 드릴 자격이 없다고 했다. 그날 나는 모두가 앉아 있는 가운데 혼자 서 있었다. 목사님은 정확히 나를 가리키며 다음 주에 성경을 사서 다시 오라고 했다. 그렇게 교회에서 쫓겨났다.


나는 교회 앞 놀이터에 앉아 그네를 오래 탔다. 일요일 아침의 따가운 햇살을 홀로 차지했다. 성경이라는 건 얼마나 대단한 걸까. 성경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얼마나 고귀한 사람일까. 나는 오늘 어디에서 기도를 해야 할까. 내가 오늘 기도를 하지 못해서 그것 때문에 할머니와 함께 살 수 없게 되면 어떡하지? 주머니에서 헌금으로 준비해온 동전이 짤짤 소리를 냈다. 그 돈으로 핫도그를 사먹었다.


다음 주부터는 일요일이면 늦게까지 이불 속에 처박혀 텔레비전 만화를 봤고, 교회에는 가지 않았다. 어차피 할머니도 교회 같은 데는 다니지 않았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할머니는 날마다 잣질에 나가서 나를 기다렸다고 한다.


“오믄 온댄 연락이 올테쥬.”

(오면 온다고 연락이 오겠죠.)


“겅해도 모르주게. 저디서 막 올 거 닮앙…….”

(그래도 모를 일이지. 저기서 막 올 거 같아서…….)


이게 동네사람들과 할머니가 나눈 매일의 대화였다.


잣질은 흙보다 돌이 더 많은 길이다. 돌을 성(城)의 담처럼 쌓아 다닐 수 있게 만들어놓은 길. 어른들이 말하는 잣질이 어딘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막연히 큰 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기다리는 사람이 어느 쪽에서 올 줄 알고 큰길에 서서 내내 바라보았을까. 그때도 내내 웃는 지, 우는 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을까.


할머니는 언제라도 내가 돌아오면 삼계탕을 끓여 주려고 마음을 먹었던 모양이다. 아마 그때 우리 둘 사이에 삼계탕은 가장 좋은 음식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닷새에 한 번씩 오일장에 생닭을 한 마리씩 사왔고, 냉장고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으니, 상해서 버렸다. 그걸 동네 사람 모두가 알았다. 나만 빼고.


서울에서 다시 제주로 내려가 할머니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할머니의 치마폭으로 돌진했다. 내가 울었나. 잘 모르겠다. 그냥 할머니의 치마 주름에 온몸을 비벼댔던 기억만 있다. 그날 할머니가 내내 아쉬워했던 것도 기억한다. 어제까지 닭이 있었는데, 어제는 닭이 있었는데, 어제만 왔어도 삼계탕을 먹이는 건데…….


그리운 것들은 이렇게 늦게 도착한다는 할머니 방식의 한탄이었다. 할머니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지만 닷새에 한 번 생닭에 모든 기도를 쏟아 부었을 거였다. 닭이 성경을 이겼다.


그날 우리가 함께 먹은 음식은, 가지와 오이, 상추쌈 같은 것들이었다. 모두 우영팟에서 난 것들이었다. 할머니는 자꾸만 삼계탕을 얘기하면서 상추를 씻었다. 확실히 웃는 얼굴이었다.


#제주도 #몽유병 #기다림 #삼계탕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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