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화 2 – 아이스케키와 뇌선
뇌선이라는 약을 내내 궁금해 했다.
뇌선.
할머니의 만병통치약이었다. 할머니는 아프면 늘 그 약을 먹었으므로, 어린 나는 그 약이 없다면 아픈 할머니가 나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국민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서울로 이사를 왔고, 오자마자 할머니가 크게 아팠는데, 무엇이든 다 있다는 서울에서, 온 동네 약국을 다 뒤졌는데도 뇌선이 없었다. 그때 어린 나는 충격을 좀 받았더랬다.
제주에 사는 동안에는 늘, 뇌선이 있었다. 종이접기 하듯 접어놓은 하얀 종이를 펼치면 곱게 갈아진 가루약이 들어 있었다.
할머니는 검고 뭉툭한 손으로 약종이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깊은 잠을 잔 뒤 다음날 다시 일어났다. 새벽부터 빨래를 했고, 지게를 지고 나가 땔감을 구해왔고, 텃밭을 일구었다.
뇌선은 이른바 해녀들의 진통제였다. 그렇지만 해녀들만 먹지는 않았다. 우선 평생 밭일 노동에 매진했던 우리 할머니가 먹었고, 평생 세탁소를 운영해왔던 내 선배의 부친께서도 아프면 뇌선을 먹었다고 했다. 해녀들이 먼저 먹었으되, 노동하는 거의 모든 나이든 사람들이 이 약을 먹었을 것이다.
JTBC 뉴스룸에서 몇 년 전, 해녀들의 인터뷰에서 뇌선을 다룬 적이 있다. 해당 방송의 인터뷰를 통해서 부산의 해녀들이 이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물질을 할 수 없다고 인터뷰했다. 부산의 해녀들도 제주의 해녀들과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해녀들 대부분은 만성 두통 때문에 상습적으로 약물을 복용했다. 물론 처방약은 아니었다. 그 가운데 뇌선이 절대적이었다. 뇌선의 효능은 다른 진통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약은 대체 어떻게 해녀들에게로 오게 된 걸까.
나는 그저 추정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몇 년 전에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일본에도 노신이라는 약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쩌면 1970년대 이후 일본의 흰색 가루약 노신이 제주에 들어와 해녀들에게 널리 퍼지고, 이후 부산을 비롯해 해녀들의 생활문화권이라 할 수 있는 해안가 중심으로 이 약이 전파됐다고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적당히 아픈 날에 할머니에게는 뇌선 말고 다른 약이 있었다. 여름철의 아이스크림이었다.
유난히 할머니의 얼굴이 붉게 물든 날, 할머니는 내게 아이스크림을 두 개 사오도록 시켰다. 내가 오렌지색 하드를 날름날름 혀로 핥아먹는 동안, 할머니는 포장 비닐을 뜯지 않았다. 그걸 얼굴에 문지르고, 목덜미에 가져다 대고, 검고 뭉툭한 손가락 사이에 끼워서 한참을 있었다. 나는 아이스크림이 허무하게 다 녹는 것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할머니의 혼잣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이추룩 댕 이시난 살아짐직 허다. 써넝하난 살아짐직 허여.”
(“이렇게 대고 있으니까 살 것 같다. 시원해서 살 것 같아.”)
어린 손녀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오게 해서 그게 다 녹도록 몸에서 열이 나는 이곳저곳의 대보는 할머니. 그녀가 혼자 감당해야 했던 밭농사 노동의 규모를 나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땅을 일구어 놓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집안의 남자는, 술값으로, 선거비용으로, 두 집 세 집 살림으로 모두 날려버렸다. 신화의 생애를 탕진한 할아버지는 먼저 세상을 떠났다. 신화는 집에 딸린 조그만 밭 하나를 목숨처럼 일구었고, 어린 나를 보살폈다.
하루는 전날 밤에 이미 아이스크림으로 얼굴도 손가락도 다 써넝하게 만들고, 뇌선도 먹었는데, 그러고도 할머니가 여전히 아팠다. 할머니가 온종일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나도 그 품에 안겨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있기엔 할머니가 너무 뜨거웠다. 주름 깊은 얼굴이, 늘어진 살가죽이, 안쓰럽게 쳐진 목덜미가, 나를 씻기던 손가락 마디마디와 내가 얼굴을 파묻고 숨을 쉬던 빈 허물같은 가슴이.
그것은 사랑의 온도와는 달랐다.
나는 할머니 품에서 살금살금 기어 나와 슈퍼마켓으로 달렸다. 외상으로 아이스크림 두 개를 집어 들고, 이불 속 뜨거운 덩어리에 하나를 밀어 넣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뒤돌아 앉아 내 몫의 오렌지색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았다. 잠깐 뒤를 돌아보았을 때, 아이스크림 봉지를 입에 대고 다 녹아버린 액체를 쪼로록 마시던 눈과 마주쳤다.
할머니는 웃어주었다. 어쩌면 울었을까.
우는 얼굴로 웃어준 할머니가 며칠이나 앓았는지, 어떻게 나았는지, 그 다음의 일들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 뇌선 봉지가 여러 개 머리맡에 놓여 있던 것은 생각난다. 뜨거웠고 배가 고팠고 무서운 날이었다. 여름인데도 아주 일찍 방안에 어둠이 내렸다.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뜨거운 숨이 어둔 방을 가득 메웠다. 그러다가 꼭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아 몹시 두려웠다.
어른이 된 다음 가끔씩 아이스크림을 먹기 전에 얼굴과 손목에 그걸 대본 적이 있다. 그래도 할머니가 말했던 살아짐직하다는 느낌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당연하다. 극심한 노동으로 생의 비극과 슬픔을 통과했던 어떤 촌로의 삶…,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면 무례한 거짓말이다.
밤이 되면 나는 늙은 신화의 팔을 베고 잤다. 잠이 들 때까지 살가죽이 다 늘어난 팔뚝을 쪽쪽 빨았다. 자기 보호자의 팔뚝이나 허벅지를 그렇게 빨아대는 개가 있다고 한다. 그걸 쭙쭙이라고 부른다. 어미 개와의 분리불안이 있거나 보호자가 매우 안전하다고 느낄 때 그렇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 시절의 나는 쭙쭙이 하는 개였다. 그 어린 개는 신화의 뜨거운 몸을 먹고 자랐다. 뇌선으로 통증을 유예시키고 아이스크림으로 해열하던 신화의 뜨거운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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