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인들 연대기
내 인생의 청춘은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서 물든 것이었다. 이를 테면, 너바나이거나 리버 피닉스 같은. 이제와 그들을 추억하자고 하니, 그들은 너무 먼 곳에 있다. 늙기 전에 이미 죽어버린 그들은 바로 그 이유로 신화가 되었다. 그러니 추억은 그들에 대한 추모인 동시에 나의 지나간 젊음에 대한 안타까운 회고쯤에 지나지 않을 뿐일 것이다.
나는 이제 오십을 목전에 두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 스무 살 시절은 오만하기도 해서, 마흔이 넘도록 살아있는 나 자신을 생각하면 너무나 징그러웠다. 그렇게 오만했던 시절이 마음으로는 어제 같다. 그리고 이쯤 나이가 들어서 알게 된 것 한 가지는, 스무 살을 어제 같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다. 스물 세 살의 딸아이에게 3년 전의 너는 이랬고, 저랬고 얘기를 하면 아이는 말한다. “너무 옛날 얘기잖아.”
아직 스물 셋인 딸아이의 기준으로, 전생 같은 얘기를 해 볼까 한다. 나의 청춘 혹은 나의 어느 젊음을 함께 했던 나의 노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돌이켜 보건대, 나는 단 한 순간도 노인 없이 살아본 적이 없다.
내 인생의 모든 순간에 노인이 있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물리적으로 사실이다.
내가 사는 모든 시간과 공간에 노인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관련이 있기도 하지만, 전혀 어떤 접점 없이 살다간 사람들인데, 인생의 어느 한 시기를 나와 공유했다. 나의 외할머니, 나의 아버지, 나의 시어머니, 나의 엄마……. 그러니까 지금부터 쓰려는 것은 내 인생에 존재했던 ‘나의 노인들 연대기’인 셈이다.
이런 이야기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나의 회고를 통해서만 그들의 삶이 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것은 불완전하다. 나는 그들을 왜곡하는 필터다. 왜곡하지 않으려 애쓸수록 그들의 생애는 일그러진다. 그럼에도 그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곧 나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글은 이제 곧 도착할 나의 미래에 대한 예감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1902년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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