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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아침 Oct 13. 2024

엄마 1 - 님아, 그 돋보기를 쓰지 마오!

님아, 그 돋보기를 쓰지 마오!


엄마는 예쁜 할머니다. 젊은 시절의 사진에서 엄마와 아빠 둘 다 영화배우 못지않은 미모가 돋보인다. 스스로도 자신의 미모에 대한 자신감이 꽤나 있는 편이다. 엄마가 예뻐서 반했다는 건 아빠도 인정한 바였다. 사는 내내 도시를 좋아했고, 도시에서도 특히 백화점을 좋아했다. 외출할 때는 꼭 색깔을 맞춰 모자까지 갖춰 쓴다. 카페에 가면 꼭 시나몬 파우더를 뿌린 카푸치노를 마신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적잖이 불만족스러운 말년을 보내는 중이다.


나는 2010년에 제주에 내려오면서 길어야 3년이면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내 인생은 내 뜻대로 이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나는 여전히 제주에 산다. 그러니 어쩔 도리 없이 엄마가 아예 제주로 내려와 우리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엄마는 1987년에 떠난 제주로 2015년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늘 생각하긴 했지만, 엄마는 까다로운 편이다. 나는 거의 모든 일을 그냥 대충 넘어가는 편이지만, 엄마는 대충 넘어가는 일이 조금도 없다. 제주에 살기 시작하면서 사소한 불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안경 같은 것. 엄마는 오래 쓰던 안경이 맞지 않게 되어 제주 안경점에서 새로 안경을 장만하기로 했다. 안경을 하겠다고 비행기 타고 서울에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불안했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새로 한 안경과 돋보기가 마음에 든다고 하더니만, 어느 날은 코 받침이 불편하다고 했고, 다른 날은 안경다리가 머리를 너무 조인다고 했다. 컴플레인 사유가 생길 때마다 안경점을 찾아 사소하게 다시 조율을 했는데, 그러면 그날은 괜찮다고 했다가 다음 날은 또 같은 문제를 호소했다. 하지만 엄마는 까탈스러운 할매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안경에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열심히 설명한다.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입증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놓고 안경점을 나오면서는 까다로운 노인네라고 흉을 보면 어쩌느냐고 한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가 하면서 걱정한다.


“다른 안경점 가서 딴 거 맞출까?”


내가 내놓을 수 있는 대안이란 고작 이런 거다. 그러면 엄마는 손 사레를 친다. 다음 날에 컴플레인은 다시 시작된다. 세상이 온통 뿌였다고 했다. 날마다 먼지가 둥실둥실 떠나는 것 같다고 했다. 안경 초점이 안 맞는지 자꾸만 어지럽다고 했다. 그러다가 혼잣말이 이어진다. 제주에 내려오기 전에 엄마 혼자 지냈던 아파트 인근 안경점 얘기를 꺼낸다. 거기서 맞춘 안경이 당신 눈에 제일 잘 맞는다고 몇 번이고 (다 들리는) 혼잣말이다.


“그 양반이 안경을 참 잘했어. 딱 쓰면 아주 시원하고 환하게 잘 보이더라고.”


그런 얘기를 몇 번 듣다 보면, 나도 신경질이 난다.


“거길 어떻게 가요?”

“얘는! 누가 거길 가쟀어? 그 양반이 잘 했다는 거지.”


그 안경점은 나도 아는 곳이다. 친절한 주인장이 있는, 엄마가 오래 이용한 안경점이었다. 그런데 거길 다시 찾아가면 모든 문제가 정말 다 해결될까? 정말 안경 혹은 안경점의 문제일까? 나는 자신할 수 없었다.


우선 그녀는 벌써 수년 전에 양쪽 눈 모두 백내장 수술을 했다. 녹내장 때문에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검진과 치료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십여 년 전에도 엄마는 노인이었고, 지금은 더 노인이 되었다. 그녀의 관절처럼 그녀의 눈 역시 회복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이 들고 있다는 게 이 모든 불평과 불만의 근원적 문제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엄마가 원하는 만큼 말끔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그렇게 불편한 몇날며칠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바람이 잘 들지 않고 습도가 매우 높은 날이었다. 습도가 높은 날이면, 엄마도 나도 온몸이 자근자근 아프다. 꼼짝도 하기 싫어진다. 몸살을 앓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런 날에 엄마가 얇은 윗옷을 흠뻑 적셔가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장롱 깊은 곳으로 손을 뻗어 한참이나 더듬더듬 했다.


“더운데 뭐해요? 내가 찾아줄게. 뭐 찾아요?”

“아냐. 이건 내가 찾으면 돼.”


그렇게 한참 씨름을 하던 그녀의 손에 뭔가 하나 들려 나왔다.


오래된 안경 케이스였다. 아빠의 안경 케이스.


그 안에는 아빠가 쓰던 돋보기가 들어 있었다. 말하자면 아버지의 유품인 셈이다. 그것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줄 나는 몰랐다. 엄마가 그걸 썼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야~, 잘 보인다! 정말 시원시원하게 잘 보여!”


얼굴에 주루룩 흐르는 땀을 닦아낸 뒤 세상에 없는 남편의 돋보기안경을 쓴 엄마는 환하게 웃었다. 엄마는 예쁜 할머니다.


아빠의 안경을 쓴 그녀는 이내 덮어두었던 성경을 펼쳐서 큰 소리로 몇 줄을 읽어 내려갔다.


다행이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신파적인 요소를 찾아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찾아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미 신파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신파도 신파 아닌 게 된다(고 믿는다). 성경을 마저 읽으려는 엄마를 혼자 방에다 두고 나왔다. 커피를 마시려던 참이었는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은 남편의 돋보기안경을 쓴 자기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던 엄마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얘! 근데 이걸 끼고 거울을 보니까 내가 왜 이렇게 주름이 많아? 너무 폭삭 늙었어. 세상에~! 어떻게 이런 얼굴일 수가 있어? 나 이렇게 늙은 거, 너도 알고 있었어?”


#엄마 #돋보기 #노년 #가족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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