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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아침 Oct 13. 2024

엄마 2 - 개가 총을 맞고 돌아왔어, 그날….

개가 총을 맞고 돌아왔어, 그날….


1947년 4월, 그날의 일에 대해서 엄마는 매우 단편적으로, 파편적으로 말할 뿐이었다. 


1939년에 태어났으므로 엄마는 그때 아주 어린 여자 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앞집, 옆집, 뒷집은 모두 괸당이었다. 그런 가까운 집안의 젊은 남자들이 죽거나 다쳐서 돌아온 일이 왜 일어났는지 기가 막힐 뿐이었다


엄마는 어린 내게 아주 가끔 그날의 여러 죽음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젊은 사람이 있는 집에서는 누구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고 했다. 어린 내가 물었다. 


“왜 죽었는데?”


어른인 엄마가 답했다. 


“모르지.”


몇 번을 물어도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말도 안 되게 비극적인 일을 겪은 어린 여자아이는 나이가 들어서도 그 말도 안 되는 일의 전모를 다 파악하지 못한 채로 자랐다. 자라면서 무언가 짐작한 바가 있었겠지만, 말 되게 설명할 방법도 평생 몰랐다. 나 역시 더 이상은 캐묻지 못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의 과거에는 본래 비극이 많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엄마는 여전히 그 사건의 역사적인 배경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누가 누구를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이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사건이었다. 국가폭력이라는 것은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황망한 개념이다. 그날을 설명하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피 흘리고 죽어간 사람들에게?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어느 시대든 거대한 비극의 사태는 말문이 막힌 채로 다가온다. 그래서 엄마가 말하지 못하는, 그녀의 기억 속에서 뒤엉킨 모든 서사는 그 자체로 거대한 진실이다. 


언젠가 엄마는 그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키우던 개가 있었어. 아침이면 동네에서 놀다가 저녁에 집에 들어오고 그랬는데, 그날은 그 개가 총에 맞아서 피를 흘리면서 들어왔어. 나도 너무 놀래서 그 개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지.”


총에 맞은 것이 키우던 개만은 아니었다. 제주 사람들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한 집에서 하나씩 둘씩 죽었으니, 주검들은 이내 쌓이고 쌓였다. 그러니 마을의 제삿날이 모두 같을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4월은 내내 슬픔의 계절과 같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엄마는 그날의 비극을 피 흘리는 개라는 이미지로 당신 세계 안에 조각처럼 새겨놓았다. 지금까지 조금도 닳지 않는 조각이다. 


#4.3 #제주도 #개 #총 #가족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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