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순장조로 내 남편을 묻으려고…
어쩔 수 없이, 엄마는 옛날 엄마다. 옛날 여자다. 남편, 그러니까 당신 사위가 설거지를 하면 엄마는 안절부절못한다. 남편의 등 뒤에서 나를 향해 오만가지 인상을 쓰며 야단을 한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면 엄마가 고무장갑을 끼고 자기가 하겠다고 나선다.
이상한 일이다. 아빠도 설거지를 했고, 걸레질을 했다.
우리가 결혼하지 얼마 안 됐을 때, 엄마는 육지에, 우리는 제주에 살았다. 그때 엄마를 만나러 가면 남편은 엄살을 떨곤 했다.
“어머니, 설거지를 너무 많이 해서 습진이 생겼어요.”
“아이고 이를 어째? 그러니까 김 서방! 고무장갑을 꼭 껴야지!”
고무장갑을 꼭 끼라는 엄마의 말은 진심이었고, 그해 크리스마스 무렵, 엄마는 기모가 들어간 고무장갑을 두 개 사서, 하나는 자신이 갖고 다른 하나는 사위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랬던 엄마가 함께 살게 되자 사위의 설거지를 못 견디게 되었다. 못 견디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내가 친구들을 만나 외출시간이 길어지면 혹시라도 남편의 식사를 챙기지 못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내 전화기에 불이 난다.
“대체 어디냐? 이제 들어와야 김 서방이 밥을 먹을 거 아니냐!”
우리 집은 아침을 거르는 법이 없다. 아이들이 다 컸으니 알아서 챙겨 먹거나 거르거나 하는데, 어쨌든 여든이 훌쩍 넘은 노인과 함께 살고 있으니 어른 셋의 아침은 매일의 의식처럼 챙긴다. 아침 준비를 하면서 엄마 몫의 점심, 저녁 식사 반찬을 따로 챙긴다. 여기에 남편에 대한 고려는 많지 않다. 그는 집밥을 좋아하는 ‘토종’이지만, 집밥 이상의 집밥을 차려내는 식당이 집 주변에 있으며, 식당 주인들은 밥을 두 그릇씩 먹는 단골인 내 남편을 좋아한다. 또한 그는 건강한 사내이므로 집에서 제 밥을 차려 먹을 수 있고, 더 이상적이게는 장모님을 위한 밥상을 준비할 수도 있다.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엄마는 이내 쌍심지를 켜고 말한다.
“딸 가진 죄인이란 말도 있어!”
엄마는 아들은 낳지 못한 8남매 맏며느리의 스트레스를 안고 평생을 살았다. 비록 그런 시선으로부터 아빠가 엄마를 철저히 방어했지만, 아들 중심주의 사회에서 누구도 진공상태로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것으로 인한 상처를 조금이라도 받지 않고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딸 밖에 없는 엄마가 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사위와 함께 살면서 그 죄의식을 내내 붙들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끔찍했다. 내가 엄마의 죄의식 위에서 살아야 한다면, 남편이 그 죄의식으로 차려진 밥을 먹어야 한다면, 차라리 아무도 살지 않는 편이 낫다. 아무 것도 먹지 않는 편이 낫다. 나는 수년 간, ‘딸 가진 죄인’과의 전쟁을 벌였다. 온 집안이 폭발할 정도의 전쟁이었다.
“나는 너 흠 잡힐까 봐 그런 거지!”
‘딸 가진 죄인’의 안절부절은 그런 거였다. 정작 사위라는 남자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데, 지레 겁먹은 딸 가진 죄인의 여자……. 남편의 밥을 챙기지 못하면 그게 흠이 되는 삶, 그런 삶이라면 살지 않아도 된다고 엄마를 향해 윽박을 질러댔다. 나는 더 순하게 말할 방법이 없었다. 수년 간 전쟁을 벌인 끝에 엄마 입에서는 더 이상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직도 여전한 건 있다.
“사위는 백 년 손님이야!”
사위에게 고무장갑을 꼭 끼라던 엄마와 사위를 백 년 손님으로 생각하는 엄마는 같은 사람이다. 딸과 사는 남자가 설거지를 ‘도와주는’ 일은 고맙지만, 자신과 사는 딸의 남자가 설거지를 하거나 끼니를 거를지도 모르는 그런 일이 ‘당신 눈앞에서’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그 순간 사위라는 남자를 아들이라는 남자와 동일시했을지 모른다. 엄마는 1939년에 태어난 여자다. 집안의 남자들이 당신 어머니의 삶을 훼손하는 걸 보면서, 스스로 아들이 아닌 걸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살아온 여자다.
그런 여자는 지금 사위와 함께 살고, 그 사위를 아들처럼 사랑한다. 딸 밖에 없었던 할머니도 사위인 아빠와 함께 살았고, 그 사위를 아들처럼 사랑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내내 당신 사위가 오기를 기다렸고, 헐레벌떡 도착한 사위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그 모든 장면은 엄마의 죄의식이라는 그림자이기도 하다.아들이 없는 맏며느리인데 친정 엄마를 거두었다는 종류의 죄의식. 이것은 할머니가 당신 사위에게 갖고 있던 마음과 닮았을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종종 이야기한다.
“이 세상에 현존하는 모든 여성 생명체 중에서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여성이 우리 엄마야.”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사랑의 근원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애써 헤집어 보지 않기로 했다. 할머니도 아들의 부재라는 결핍을 떨치지 못한 채 살았고, 엄마 역시 할머니를 닮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 그런 여자들을 세상은 위로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사위는, 자기 삶에 대한 의탁인 동시에, 딸에 대한 의탁이기도 할 것이다. 할머니처럼, 엄마도 죽는 날까지 사위를 사랑하다가 죽을 것이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나는 남편을 향해 말한다.
“만약 가능하다면 엄마의 순장조에 당신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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