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잘’ 한다는 기준
나는 요가강사치곤 아주 뻣뻣한 몸을 가졌다.
요가보단 미술 직종에 더 오래 머물렀으니 어쩌면 당연한 걸 지도 모르겠다. 스트레칭도 없이 그저 캔버스와 종이에 코를 박고 하루 8시간 내내 쭈그려 앉아있는 일들이 다반사였으니까.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무릎을 접지 않으면 앞으로 숙이기가 불가능했고, 나비자세를 하면 무릎이 천장 모서리를 향해 쏟아올라 엉덩이뼈가 아팠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숙여지긴 하지만, 입시기간부터 약 10년간 방치해 둔 굳은 몸은 꾸준한 수련으로도 쉽게 펴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23년부터 근근이 다니던 동네 독서모임에서 직업과 관련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요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요가를 한다고 하면 *발레나 서커스 수준의 유연성을 가져야만* 할 수 있다는 편견을 항상 많이 들어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A : 요가하려면 다리도 찢고 막 유연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레요클 : 저는 그렇게 유연한 몸은 아니에요! 다리 찢기 못해요.
라고 했더니 ‘그건 좀 심한 거 아니에요? ^^;;;’
라는 악의 없는 머글의 순수한 답이 들려온다.
이후에 진짜 요가란 무엇인지, 왜 몸이 뻣뻣해도 요가를 할 수 있는지, 요가에서 얻는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꽤 열심히 설명을 해드렸는데. 그분의 편견이 깨졌을까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다. 어쩌면 유연하지 않은 나의 몸을 방어하는 말들로 들렸을지도 ㅎㅎ
그래서 오늘의 글은 A님에게 전했던 말들을 정리하며 요가를 잘하는 기준에 대해 나름의 생각과 파탄잘리 요가수트라 철학을 녹여내 적어보았다.
구독자님들께서도 한 번쯤 해보시기를.
나는 수련하는 내내
호흡이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다.
나는 고통과 시원함을 구분 지을 수 있다.
나는 몸이 보내는 신호가 무엇인지 알고,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다.
내 몸의 가동범위와 한계점을 인정하고,
적절한 곳에서 유지할 수 있다.
다른 회원의 수련 속도와 관계없이
나에게 집중하는 편이다.
나는 힘이 쓰이는 방향을 제외하고는
몸을 충분히 이완하고 있다.
요가를 한다는 건 나와 친해지는 과정이다. 그래서 자세를 얼마나 정확하게 하느냐 보다는 (이건 나보다 먼저 배운 선생님이 잡아줄 거라 확신하고) 나의 몸, 나의 한계를 알아갈수록 더욱 요가를 잘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파탄잘리 요가수트라 구절을 살펴보면 “아직 오지 않은 고통은 피하라.”, “아사나는 편안하고 안정되어야 한다. ”
를 설파하며 수행자에게 완벽한 자세와 엄청난 노력, 고행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에 문항에는 객관적인 지표가 하나도 없다. 누군가와의 비교, 경쟁, 줄 세우기도 없다. 스포츠와 확연히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예술이 아니기 때문에 피겨나 리듬체조처럼 스킬, 기술적인 부분 역시 요구하지 않는다. 기술이 필요하다면 그건 이제 회원이 아닌 요가강사님이 배워야 할 부분인거지 회원이 체크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 아래부터는 문항을 하나씩 풀어써보았다.
자세 < < < 호흡
나는 수련하는 내내
호흡이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다.
이 문항을 첫 번째로 둔 이유는 단 하나다. 요가를 할 땐 자세를 잘하는 것보다 호흡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호흡하는지, 어디로 호흡을 보내는지,
어디로 호흡하는지에 따라서 같은 자세여도 몸에 적용되는 효과가 달라진다. 호흡은 몸을 위로 뻗을 때 숨을 마쉬며 척추를 길게 늘여주는 효과를 주고, 몸을 아래로 뻗을 때는 내쉬며 복부를 조여 더 깊은 전굴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가끔 입문자의 경우 내 능력치보다 어려운 자세를 시도할 때 자신도 모르게 숨 쉬는 법을 까먹어 훕-! 참아가며 자세를 유지하는 분들이 계신다. 그게 지속되면 뇌로 신선한 공기가 유입되지 않아 두통이 생김과 동시에, 안 하느니만 못하게 몸이 더욱 긴장되어 수축한다. 숨을 참으니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지다가 몸이 뜨거워지고, 몸이 뜨거워지면 피부가 건조해지고, 건조해지면 근육 손상이 더욱 빠르게 일어나고, 그러다가 주름이 생기고 노화가 가속화되는 현상이 연달아 나타난다.
나비효과를 막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 자세에 대한 욕심을 되도록 빨리 버리기.
요가자세에 정렬은 있으나 완성은 없다. 언젠간 될 자세에 집착하지 말자.
집착을 버릴수록 요가를 더욱 잘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각자의 몸
내 몸의 가동범위와 한계점을 인정하고,
적절한 곳에서 유지할 수 있다.
다른 회원의 수련 속도와 관계없이
나에게 집중하는 편이다.
‘전 요가를 못해요.’라고 하시는 입문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이 ‘유연성’ 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유연한 몸일수록 많은 자세를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래도 요가를 시작한 목표가 단지 유연해지기 위함으로 시작했다면 있는 게 더 좋긴 하니까. 그러나 정말 유연성만을 필요로 한다면 발레, 폴댄스, 클라이밍 등 대체 운동에서도 이미 많이 찾을 수 있다.
요가의 궁극적인 의미와 나는 왜 요가를 하는지-의 기준을 다시 세워본다면 유연성은 딱히 요가를 하는 데 있어서 필수 키워드가 될 수 없다. 위에 써 둔 두 개의 문항이 중요한 이유다.
우리의 몸은 모두 다르게 생겼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부모 밑에 태어나 생활습관도 다르고, 근육조직 생김새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다른데 내 옆의 사람과 똑같은 자세가 가능할 리가. 옆사람이 유연한 자세를 기갈나게 잘한다고 해서 나까지 자세를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분은 그분의 수련을, 나는 나의 수련을 하는 걸로도 충분하다.
몸 : 들리니 내 Sign???
나는 고통과 시원함을 구분 지을 수 있다.
나는 몸이 보내는 신호가 무엇인지 알고,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의 활성화로 인해 멋져 보이는 후굴 자세에 몸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게 느껴진다. 모양만 봐도 몸이 가동범위를 훨씬 넘어가고 있거나, 평소보다 과도한 땀을 흘리면서 체력의 일정 이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분들이 점점 일반화되고 있다.
고통은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몸의 신호다. 자세를 하다가 관절이 찝히는 느낌이 들거나,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통증이 은은하게 느껴지거나, 오늘 운동을 할 몸 상태가 아닐 때- 아 오늘 진짜 하기 싫다!!
왜 이렇게 하기 싫지!!! 그만해! 충분해! 여기까지만 가!라고 외치며 저항을 한다. 그럴 땐 몸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아 지금 내가 운동할 체력이 아니구나. 내 몸에는 지금 휴식이 더 필요하구나. 내 몸이 해낼 수 있는 곳은 이 정도구나를 재빠르게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신호를 보내던 몸도 계속 무시하면 삐진다. 무시가 계속되면 정말 위험할 때가 되어도 알려주지 않는다. 디스크 통증이 찾아왔는데도, 고통에서 벗어나야 된다며 ( 나는 몸이 아니라면서 ) 계속 수련을 지속한다면, 결국엔 실제로 신경세포가 타들어가 복구 불가능한 수준으로까지 가버린다.
고난도 자세를 척척 해내는 유연한 사람도 아마 지키지 못하는 문항이 있을 것이다. 아사나를 잘하는 게 요가를 잘하는 건 아니다. 땀을 많이 흘렸다고 해서, 수련을 오래 했다고 해서 요가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요가를 하는 이유가 내면의 평화와 건강함에 있다면, 이 체크리스트를 꼭 확인하며 수련을 이어나가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나의 생활습관과 환경에 맞춘- 몸에 필요한 자세를 하고 있는지. 그저 남들이 하기 때문에 무심코 따라 하고 있진 않은지. 그리고 지금 하는 수련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이 맞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모두 건강하시길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