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어 선생님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다.

by 레이지살롱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동안 한 편의 동화책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은 크레이그 포스터라는 사람(감독)이 삶에 지쳐 어릴 때 살던 남아프리카의 바다로 돌아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같이 잠수를 하며 문어를 관찰하고 교감한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아냈다. 바닷속 생물들을 너무 생생하게 찍기도 했지만 문어와 사람의 교감이 비현실 적인 우정 같은 느낌이 들어 보는 동안 문어 집에 놀러 온 사람이 문어와 함께 바닷속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의 그림책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문어와 함께 찍은 주인공이자 감독 크레이그는 문어와 교감을 통해 본인이 방문자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도시화와 문명화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자연과 교감을 이룬다는 게 현실적이지 않다. 나에게 문어란 마트에서 삶아져서 다리 한쪽이 썰려 있는 모습의 '자숙문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고 가끔 제사상에 한통이 삶아져서 올라오는 게 문어 한 마리를 통째로 볼 수 있는 기회이다. 그래서 그런지 문어를 지능이 있는 생각을 하는 생명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번 다큐멘터리를 보고 문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문어가 사람을 기억하고 함께 교감을 한다는 사실이 너무 경이로웠다. 처음 사람에게 다가가는 모습, 사람 몸에 붙어있는 모습은 친구와 놀고 있는 모습같이 보였다. 게다가 물고기들과 장난까지 치는 모습을 보니 어느새 나도 알고 있는 문어 친구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은 반려 물고기 대신 반려 문어를 키우려고 하지 않을까란 상상도 해보았다. 문어는 고양이나 개와 비슷한 지능을 가지고 있다니 정말 실현 가능한 일이 아닌가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생각은 철저하게 인간의 입장에서 문어를 바라본 모습이지 문어의 입장은 아니었다. 인간세상에 문어를 데려와 인간화하려는 생각은 내가 자연의 일부로서의 모습은 아니었던 것이다.


동물과의 교감을 떠올리니 침팬지의 어머니 '제인 구달'이 생각났다. 몇 년 전 제인 구달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녀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탄자니아에서 40년간 침팬지를 연구하며 침팬지 또한 인간과 비슷한 사회생활을 한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정글이 파괴되고 침팬지들의 수가 적어져 연구를 하기 힘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침팬지 연구 후 동물의 권익과 환경보호를 위해 나서고 있는데 아흔의 나이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녀는 도시에 사는 젊은 세대가 자연과의 교감을 잃게 될까 걱정이라고 한다. 나의 문어 선생님도 자연과의 교감을 보여주며 결국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보여주려고 했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문어나 게 등의 중추신경계를 통해 고통을 느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정부가 문어와 게, 바닷가재를 동물복지법에 포함시키기로 하면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문어를 산채로 삶는 조리법이 금지된다고 한다. 전기충격이나 냉동으로 기절시킨 뒤 조리하는 방식이 거론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 척추동물만이 보호 대상이라 무척추동물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이런 동물들의 복지에 대한 긍정적인 움직임의 기사를 읽고 반겼으나 기사의 댓글은 회의적인 글이 대다수였다. 문어가 무슨 대수인지, 마치 살만해지니 별걸 다 신경 쓴다는 글이 많았다. 나처럼 문어는 문어숙회로만 생각한 결과 일까 척추동물의 복지에 관한 기사였다면 조금 공감능력이 발휘되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현실세계에서는 자연과의 교감은 여전히 먼 나라의 느낌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연의 일부라는 걸 명심하지 않으면 몇십 년 후 우리 아이들에게 다시 되돌아오는 악순환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자연재해들도 인간의 자연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들로 인한 결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좀 더 오래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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