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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치 인생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by 레이지살롱

오랜만에 새로운 곳에 버스 타러 갔다가 내가 방향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동네지만 처음 가본 정류장에서 옆동네 가는 길이었는데, 반대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버스를 놓쳤다. 그래도 다행인 건 뭔가 싸한 느낌이 들어서 다시 확인하고 길 건너 다시 버스를 탔다는 것이다. 보통은 그 반대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가다가 알아채곤 한다.


같은 동네에 거의 7년째 살고 있고, 같은 회사에 11년째 다니면서 아이 낳고는 거의 회사 <> 집만 다니기에 새로운 곳을 다닐 일이 거의 없어서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혼자 어딘가 가야 할 때는 어김없이 헤매곤 했다. 지난주에도 헤매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결혼 전엔 이사를 가거나 이직을 하면 기본 일주일은 헤맸다. 일주일은 어차피 헤매니 길을 잘못 들어도 그러려니 했다.


내가 길치가 아니라 방향치라고 하는 이유는 항상 반대방향으로 가서 길을 잃기 때문이다. 한참 가다가 이상해서 보면 반대 방향으로 가있고, 버스도 반대 방향에서 타고, 지하철도 반대 방향으로 타곤 한다. 그나마 지하철은 발견하기가 쉬워서 한 두정거장 만에 내리는데 버스는 기본 1-20분은 가다가 발견한다. 호주에 있을 때 나의 방향치 능력이 피크를 찍었는데 집들이 다 비슷비슷하고 남다른 건물이 없으니 반대 길을 하염없이 걷곤 했다. 최악은 버스를 잘 못 타는 건데- 반대 동네에 사는 친구를 버스에서 두 번이나 만난 적이 있다. 만나면 반가운 친구였지만 버스에서 만나는 건 아찔했다. 버스가 자주 오지 않는 동네였다.


요즘 같이 스마트폰 지도 앱이 있는데도 왜 길을 못 찾냐 하는 사람이 있지만(=나의 남편) 나는 지도를 잘 못 읽겠다. 보고 있는데도 어느 방향인지 모르겠다. 너무 답답하지만 이렇게 태어난 것 같다는 좌절감이 드는 부분이다. 누군가 지도를 잘 보는 법 같은 방법을 가르쳐 주면 좋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편도 길눈이 밝고 아이도 길눈이 밝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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