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성찰
지난달, 글쓰기 수업 때 이윤영 작가님이 추천해주신 안규철 작가의 '사물의 뒷모습'이 글쓰기 모임에서 같이 읽는 책으로 선정되어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조각가이자 예술가인 안규철 작가가 사물의 이면에 대해 간단하면서 심오한 일러스트와 자신의 생각을 적은 에세이다. 책이 얇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도서관에서 빌렸다. 하지만 요즘 실용, 자기 계발서만 읽다 보니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는 글의 내용이 도무지 머릿속에 안 들어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공감되는 글들을 발견하며 수월하게 읽게 되었다.
예술가란 죽은 이름들, 낡고 더럽혀진 이름들을 지우고 아직 이름이 없는 것들, 새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낯선 것들의 이름을 새로 쓰는 사람이다. 예술가로서 이름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이름들을 부르느냐가, 그 호명이 한낱 잡담과 소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중요하다. p103
타인에게 자기 내면의 온도를 전하는 것, 모르는 사람에게 따뜻한 손을 내미는 것, 그러기 위해 부도체가 아닌 특별한 그릇을 만드는 것, 그것이 예술가의 일이다. p158
예술가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들이니,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했다. 내가 그 기도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에게 새로운 길이 되는 예술을 했던 적이 있었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예술의 이름으로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p203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책에서 예술가에 대한 글귀만 뽑은 거 보면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사물의 이면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시각 디자인을 전공해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사물의 외관을 꾸미는 거에 더 여념이 없었던 것 같다. 항상 본질에 대해 먼저 생각하려 하지만 현실과 이상에 괴리가 있듯이 회사에서 디자이너에게 바라는 것은 충분한 성찰 없이 실체 없는 무언가를 있어 보이게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아무도 본인들이 뭘 만드는지도 모르고 요청을 해오고, 그걸 생각할 시간도, 상황도 없이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 반복된 작업이 이어지다 보면, 나 또한 그냥 있어 보이게 만드는 거에 치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모자람과 능력 부족이 아니었을까. 정말 능력 있는 디자이너는 없는 본질도 디자인으로 만들어 내지 않을까를 고민했다.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이것밖에 못해서가 아닐까 자책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나는 그림과 글을 쓰는 걸 쉽게 생각해서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매일의 글을 쓰며 기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글을 돌아보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들은 사유할 수 있는 글보단 그날의 메모에 더 가깝다. 이제는 짧은 글에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다. 깊은 생각과 성찰 없이 나는 예술가라고 할 수 있을까. 나도 예술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것들과 행위의 본질에 가까워지기 위해 계속 책을 읽고 있는데 요즘 책을 읽을수록 나에게 꽂히는 글들은 나를 계속 깨우는 언어들인 것 같다. 내가 요즘 고민하는 것은 나의 재능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더 예술가라는 말에 꽂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들은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경험하던데, 예술가에겐 영감이 오는 순간이 아닐까. 사물의 본질을 알고 있어야 그 이면까지 꿰뚫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다음 책으로 철학책을 대여했다. 지금의 나로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기에 책의 힘을 빌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