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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

우리 아빠는..

by 레이지살롱


주말에 아빠에게 다녀왔다. 아빠는 용인에 천주교 묘역에 모시고 있다. 담배를 끊은 지 20년이 넘은 아빠는 매일 반주로 술을 드셔서 간 건강에 유의하셨는데, 6년 전에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폐암 3기에 발견되었는데, 수술을 할 수 없는 위치에 6개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를 권유받았지만 아빠는 나와 오빠에게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말씀하시고 자가 치료를 위해 한방병원, 황토방 등을 찾으셨지만 효과를 얻지 못하고 암 선고 4개월 후쯤 급속도로 안 좋아지셔서 결국 6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상태가 안 좋아지시면서 아빠는 나와 오빠에게 시신 기증에 대해 말씀하셨다. 돌아가시기 전 가진 것 없지만, 세상에 와서 많이 얻고 가는 데 갈 때 좋은 일 한번 하고 싶다고 병원을 알아보라고 하셨다.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시신기증을 안 받는 곳도 있는데 병원을 알아보니 카톡릭 대학 병원이 돌아가시고 미사도 매번 지내주고 용인에 있는 천주교 묘역에 안치도 해주니 우리가 천주교인은 아니지만 종교적으로 시신에 대한 예를 갖출 거란 기대에 카톡릭 병원으로 결정했다.


장례식 때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았는데도 시신기증은 여러 가지 장례절차를 단축시켰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항암치료를 포기하셨을 때도, 시신기증을 생각하셨을 때도 아빠는 마지막까지 자식들에게 짐을 주지 않으시려고 하셨던 것 같다. 시신기증은 본인이 기증한다고 서약을 해도 가족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나와 오빠는 아빠의 선택을 존중했고 사실은 굉장히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는 아빠가 멋지고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아직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지 않아서 나라면 가능할지 생각해 보지 못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진 않는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기증자를 위한 첫 위령 미사 때는 오빠와 함께 방문해서 참석해 아빠를 위해 기도드렸다.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앞에 가는 아저씨 뒷모습을 보고 문득 갑자기 아빠 생각이 났다. 옷차림도, 걸음걸이도 아빠 같지 않은데 말이다. 벌써 4년, 아무렇지도 않은 거 같았던.. 4년이 지나간다.'

몇 년 전 내가 적어 놓았던 메모였으나 많은 생각이 들어 더 이상 글을 이어서 쓸 수가 없었다.


아빠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사진관을 하셨는데, 사진관이 망하고 스쿠알렌 판매 같은 판매 같은 걸 하시다가 택시 용품을 판매하신 후부턴 가게를 내고 계속 장사를 하셨다.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시고 계산에 밝지 못하셔서 장사랑은 안 맞는 느낌이었지만 생계를 위해 다른 대안이 없으셨던 것 같다.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싫어하시고 차라리 내가 손해 보고 말지라는 생각으로 사셨다. 어렸을 때는 담배도 많이 피우시고 게으른 아빠로 기억했는데 내가 고등학교 때 이후로 담배를 끊으시곤 산에 다니시기 시작한 이후로는 부지런한 생활을 하셨다. 건강에 관련된 책도 많이 읽으시고 매주 산에 가시고 매일 한 시간 정도씩은 걷고 폐암인지 알기 전까지는 매일 헬스장에서 1-2시간씩 운동을 하셨기에 60대에도 적당한 근육으로 몸도 굉장히 좋으셨다. 몸이 건강하셨어서 암이 더 급격히 안 좋아지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계신 용인의 천주교 묘역은 축복받은 장소 같다. 위치도 좋고 넓은 곳에 해도 잘 들어 갈때마다 언제나 햇살이 넓게 비추고 평화로운 느낌이 든다. 설이나 추석 때 가면 방문객으로 주차장이 꽉 차고 복잡해지지만 그 외에는 항상 한적하다. 보통 명절 전후 좀 지나서 가거나 명절이 아니더라도 생각날 때 한 번씩 방문하는데 이번엔 지난 추석 이후로 처음 왔더니 아이가 '할아버지 오랜만에 와서 죄송해요'라고 이야기를 해서 놀랐다. 아이가 3살 때 돌아가셔서 할아버지는 사진 속 기억밖에 없을 텐데도 그런 말을 한 게 대견스러웠다. 나는 살가운 딸이 아니었어서 그런지 내가 하는 말은 '아빠, 저희 왔어요.', '아빠 저희 갈게요, 또 올게요'가 전부이다. 드라마를 보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다짐도 하던데, 드라마라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서 뭔가 하고 오지는 않지만 오래 안 가면 왠지 미안하고 허전한데 다녀오고 나면 마음이 놓인다. 부산이 시댁이라 결혼하곤 명절엔 항상 시댁 먼저 다녀왔는데 이번 설엔 아빠에게 미리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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