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감
요즘은 아이가 미래일기라고 부르는 일기를 쓴다. 미래 일기는 다름이 아닌 아이가 기대하고 있는 가까운 미래의 일기이다. 어떤 날은 오후에 할 예정인 마인크래프트 게임에 어떤 것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다음날 오는 택배에 대한 기대감을 적기도 한다. 며칠 전엔 페라리 자동차를 사겠다는 미래 일기를 적었다.
'21년 뒤 페라리를 나는 탈거다. 지금 우리 가족차는 얼마인데(일기를 쓰다가 갑자기 우리 차는 얼마 인지 물어서 당황했는데 다 쓰고 보니 가격이 일기에 적혀 있었다) 페라리는 훨씬 더 비싸다. 그래도 돈을 열심히 모아서 살 것이다.'
21년 뒤에 도대체 어떻게 돈을 모아야지 페라리를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면서 아이가 유투버나 아이돌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일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상은 뭐든 가능하니까, "페라리 꼭 사서 엄마 좀 태워줘~ 아들 덕에 페라리 좀 타보자"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정말 상상한다. 아이 덕에 페라리를 타보는 상상을. 내가 21년을 더 모아도 페라리를 살 여유가 생길까? 우선, 집에 걸려있는 대출이 35년 후에 끝난다. 역시 아이가 사는 쪽에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게다가 아이는 지난번 어른들이 주신 용돈을 저금했다. 페라리를 사겠다고.
아이가 8살 되면서 매일의 기록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기 쓰기를 시키고 있는데 아이는 그리 즐겨하지 않는 것 같고 의무감으로 쓰고 있는 듯했다. 처음엔 쓸 말이 없다며 베베 몸을 꼬고 하도 딴짓을 해서 일기 쓸게 없으면 동화책 따라 쓰기나 어린이 신문 보고 적는 걸 시켰는데 그것보단 일기 쓰기가 조금 더 낫다고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일 년이 지난 최근에 되어서야 반항도 포기하고 그냥 원래 쓰는 거라고 받아들이고 매일 스스로 쓰고 있다.
지난 설에 부산 시댁에 갔는데, 아이의 고모 옛날 일기장을 발견하여 보여줬더니 재밌어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나 홀로 집에' 영화를 우리 가족끼리 같이 보고 아이가 도둑에 대처하는 용감하고 기발한 케빈의 행동에 반해 그 영화에 푹 빠져있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 나온 영화라 그때 남편은 고모랑 사촌들과 영화관 가서 봤다고 얘기했는데 마침 고모 일기장에 영화 본 날의 일기를 발견한 것이다! 30여 년 전의 일기라니. 뭔가 과거와 현재의 일이 일기장으로 증명되어 지금까지도 이야기가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아이도 뭔가 느끼는 게 있었던 것 같다.
정말 20년 뒤에 아이가 페라리를 타고 며칠 전 썼던 그 일기장을 발견하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나는 그 나이 때 일기장에 어떤 걸 적었을까. 기억이 나는 건, 나 또한 쓸게 없었어서 힘들게 한 글자 한 글자 기록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땐 왜 일기장에 날씨 쓰는란에 그리 집착했을까. 방학 때 밀린 일기 쓰느라 힘들었고, 특별함 없던 하루하루에 항상 '참 즐거웠다.'로 끝내는 게 어려웠다. 그때는 꼭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매일 일기를 신나서 쓸 수 있을까? 나도 나의 미래 일기를 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