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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살롱 Apr 05. 2023

탈출했던 얼룩말 세로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얼마 전 어린이대공원에서 얼룩말이 탈출하며 3시간 만에 동물원으로 돌아간 해프닝이 있었다. 뉴스에서 접한 얼룩말은 도로와 사람들이 사는 골목을 누비다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 도망치는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어린 얼룩말로 보였는데 해프닝이 끝난 후에 그 얼룩말의 이름이 '세로'이며 엄마아빠를 잃고 다른 동물과 불화가 있었다는 사연을 알게되었다. 그 친구의 이름을 알고 나니 더 마음이 쓰였다.


마치 그림책 속의 주인공같았다. 그림책 속의 동물들은 탈출하여 주토피아로 가거나, 푸른 초원 속 집으로 돌아가지만 현실 속 동물들은 그렇지 못하다. 얼룩말 세로는 다행히 생포당해 죽음은 면했지만 몇 년 전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는 마취총에도 도망가서 몇 시간의 추격 끝에 사살당하고 말았다. 다시 동물원으로 돌아간 세로는 다시 행복해졌을까?


내가 생각하는 동물원의 마지막 기억은 휑하고 좁은 공간에서 무기력하게 꽈리를 튼 비단뱀, 피부병이 나서 털이 뭉치고 벗겨져 누워있는 사자, 몸을 좌우로 흔들어 불안해 보이는 코끼리, 사슴뿔이 다 잘려 있는 사슴들..이었다. 철창 안에서 행복해 보이지 않는 동물들을 마주하는 게 괴롭게 느껴져 한번 가보곤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그런 곳에 다시 놓이는 세로가 걱정되지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만 갖고 지켜볼 뿐이다. 탈출소동으로 사람들의 관심의 중심에 놓이게 된 세로는 전담사육사의 극진한 돌봄을 받고 있고 불안정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암컷 얼룩말을 데려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하지만 유명인사가 되고 많은 사람이 세로의 이름을 알게 되자 동물원에서는 세로의 이름을 외치며 아는 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하니 스트레스를 받아 공황이라도 올까 우려된다.


몇 년 전에 한 고등학생이 동물원을 자주 다니다가 관심 있게 보았던 기록들을 책으로 엮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다시 찾아보았다. 우리나라 주요 동물원 9곳의 실태를 쓴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라는 책으로 동물원에서 동물들이 살고 있는 환경과 관리등을 꼬집었다. ‘직무유기 동물원’과 그들이 만든 ‘우매한 관람객’, 이것이 국내 동물원 평가를 시작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책 내용 중에 '손에 먹을 것을 든 관람객을 보고 철장 가까이 붙어 주둥이를 내밀고 손이나 앞발을 뻗어 ‘구걸’하는 동물을 만든다. 야생에서의 그들 삶에는 구걸이 들어있지 않다.'라는 내용이 있다. 고등학생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놀랍고 기특했고 고마웠다. 나는 불편한 마음에 외면을 하고 다시 찾지 않았는데, 이 저자는 동물들이 겪는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위해 책을 냈다.


위의 책 제목을 검색하다 보니 2019년에 만든 <공영 동물원 실태 보고서> 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공영 동물원의 실태와 평가, 외국의 사례 정책제안까지 나와있어서 좀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원래 살던 생태를 지켜주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도 문제지만 동물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것이 무자극이라고 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 쇠창살에 갇혀 풍부한 숲과 나무도, 사람들 눈을 피할 공간도 사냥할 동물도 없지만, 그들을 긴장하게 하는 적 또한 없다는 것이다. 동물들에게는 겪어보지 않은 전혀 다른 긴장감만이 있을 뿐이다. 무리 생활을 해야 하는 사자나 늑대의 경우는 무리 짓지 못한 채로 살고 있거나 개체수가 많은 토끼나 앵무들은 매일 자신의 배설물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


19세기 유럽에서 처음으로 동물을 전시해 동물원의 동물을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만들었지만 현재는 동물권을 중시하며 유럽외 다른 외국들은 동물원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해외 동물원 사례를 찾아보면 동물의 자연적인 습성과 행동을 고안하도록 내부시설을 설계하고 동물원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동물 간의 상호작용, 먹이활동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구체적인 지침이 있다. 우리나라도 많은 동물단체와 시민단체들이 동물권을 위해 노력하지만 예산부족과 사람들의 관심 부족으로 동물들의 환경이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처음 동물원을 갔던 20년 전과 현재 동물원 시설과 환경, 그리고 입장료에 크게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이번 세로의 탈출로 인해 동물원의 동물권과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날이 많이 따뜻해진 지난 주말, 우리 가족은 의도하지 않게 전주의 한 동물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하지만 동물원에도 봄이 왔는지 누워만 있는 동물의 뒷모습대신 활기차게 움직이는 동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번에 방문한 동물원에서는 늑대가 무리 지어 뛰어다니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누워서 따뜻한 햇빛을 즐기며 일광욕하고 있는 미어캣을 보니 아프리카에서 느꼈던 뜨거운 햇빛을 그리워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가 살던 아프리카와 비슷한 환경에서 행복하게 누워있을 미어캣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얼룩말 세로도 새로운 친구와 함께 편하고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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