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숲으로 나가는 발걸음엔 늘 약간의 조바심이 따라붙는다. 계절이 가버릴까 봐.
12월을 보내고 1월로 접어들수록 내 마음은 바빠진다. 어느 날 갑자기 '살랑', 봄바람이 내 볼을 스치면, 그때부턴 기온이 아무리 낮아도 겨울 숲의 정취는 기대할 수 없다. 봄이 한 번 존재를 드러내면 겨울은 속수무책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1월 말이면 남쪽 지방에선 벌써 매화 소식이 들려온다.
겨울의 숲에 다정한 산들바람 같은 온화함과 친근함은 없다. 대신 무뚝뚝하지만 한결같은 듬직함이 있다. 자비로운 느낌을 뺀 자연은 아무것에도 신경 쓰지 않는 초연한 인상을 준다. 무심한 공평. 초연한 대상 앞에서는 비록 투정을 부리지 못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무엇보다, 화려했던 시절 뒤에 맞이했을 춥고 초라한 시간 또한 그저 담담하게 겪어내는 모습은 늘 경이롭다. 봄과 여름, 가을을 모두 거치고 당도하는 겨울 같은 어른으로 나이 들자고 숲에서 생각한다.
겨울 숲에선 가장 먼저 하늘로 눈길이 간다. 가장 푸르기 때문일까. 홀로 푸른 하늘에 그물처럼 드리운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본다. '앙상한 겨울나무'라는 표현은 얼마나 진부한가. 꽃이나 열매는커녕 이파리 한 장 매달고 있지 않은 겨울나무는 존재 그 자체의 위엄을 드러낸다. 도약과 재탄생을 위해 본질만 남긴 존재 앞에서 나는 궁극의 미니멀리즘을 본다.
겨울을 예찬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이유, 영원할 것처럼 맹위를 떨치던 한파도 때가 되면 물러난다. 삼사월의 꽃샘추위도 결코 오래 머무는 법은 없다. 자신의 시절을 맹렬히 살고는 투정 없이 떠난다. 자신의 때와 아닌 때, 할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잘 구분하고 변명의 말을 줄이자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