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3월 중순부터는 살구나무가 양 옆으로 빼곡히 늘어선 작은 숲길에서 살구꽃 봉오리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이 나의 큰 즐거움이다. 하루가 다르게 망울이 탱탱해져 가더니 꽃잎이 끄트머리부터 조금씩 밀려 나오기 시작한다.
아직 피지 않은 꽃 봉오리도 자기만의 시절을 산다. 겨울을 뚫고 빼꼼, 새싹이 돋은 자리로 물이 모여든다. 작고 단단한 알맹이가 된다. 잎들을 감싼 꽃받침을 뚫고 꽃잎이 미끄러져 나온 순간부터 팽팽하던 알맹이는 조금씩 탄력을 잃어간다. 차곡차곡 접혀있던 꽃잎들이 일제히 펼쳐진다. 사람들은 그제야 이것을 꽃이라 부른다. 봉오리의 시절은 끝났다.
위부터 아래로, 꽃봉오리의 변화 나는 살구꽃 봉오리에서 미완의 아쉬움이나 기다림의 설렘이 아닌 자신의 시절을 훌륭히 감당하는 완전한 순리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