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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zyvision Oct 18. 2023

23.05.29 와인, 내추럴 와인

왜 때문에 내추럴와인을 팔고 싶어 졌을까?

5월이 끝나가는 시점, 어쩌면 가오픈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봄은 가고, 빠른 여름이 다가왔다. 기후변화로 한국은 ㅂ여어어어어름ㄱ ㅏ 겨어어어어어어어어어울이 된 지 오래이니 말이다.


와인과 함께 먹을 메뉴들도 몇 번의 테스트를 통해 완성도가 올라갔다. (Y는 의외로 천재 요리사?) 꽤 만족스러운 구성이었다. 매번 Y가 모든 메뉴들을 만들어낼 수 없으니, Q와 나도 레시피를 보며 연습해야 했다.


나는 Y를 닦달해서 티스푼으로 계량화한 레시피를 정리했다. (Y는 새우 세비체에 들어갈 레몬즙을 얼마큼 넣느냐는 질문에 쪼르륵?이라고 대답하는, 마치 30년 전통의 김치 장인 같은 인간이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와인을 주문해야 했다. Y는 평일에 휴가를 내고 바쁘게 시음회를 오고 갔다. 레이지비전에 새로운 와인들이 도착해 냉장고를 채웠다.


오, 꽤나 와인바 같은 모습이다. 이제는 정말 마시러 가는 사람이 아니라 파는 사람이 되었구나 싶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우리 왜 내추럴와인을 팔기로 했더라?


내추럴와인은 수입사에서 사업장에 판매하는 가격부터가 비싸다. 손님들이 워크인으로 들어왔다가 "어라, 왜 이렇게 비싸?" 하고 놀라게 만드는 가격이었다. 컨벤셔널 와인은 값싼 와인부터 입이 벌어지는 가격까지 천차만별이지만, 덕분에 적절한 가격대의 와인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가격 때문인지 내추럴와인은 평소보다 더 한껏 치장하고 서울 어딘가 힙플에서 친구들을 만나서 마셔야 할 것 같았다. 레이지비전은? 그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것도 한참. 힙플은 무슨, 뜨끈한 찌개에 소주 한잔하기 좋은 맛집이 가득한 시장 바로 옆이다.


그러니 내추럴와인을 마시러 작정하고 오는 손님들 보다는(제발 와주시길 바라지만) 가족들과 선선한 밤바람을 즐기며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 어, 여긴 뭐 하는 곳이지?  한번 들어가 볼까? 하고 문을 여는 손님들을 더 기대할 만한 곳이었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손님들은 "헐 비싸"라고 생각하실게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Y는 왜 내추럴 와인을 골랐을까?

왜 그랬니 너.


첫째. 집에 친구들을 초대할 때 즐기기 좋은 술은 단연 내추럴 와인이었다. 신기하게도 왁자지껄 하게 맥주를 마실 때와는 다른 결의 대화가 이어지곤 했다. 그 공간에서의 경험을 레이지비전에 가져오고 싶었으니 자연스럽게 내추럴와인을 골랐다.


둘째. 재미있는 맛에 끌렸다. 펑키하고, 쥬시 하고, 쿰쿰하다고 표현되는 것들이다. 그 맛을 내기 위해 생산자마다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와인을 양조하는데, 그 모든 것이  지속 가능성과 연결된다는 점도 좋았다.


셋째.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Y, Q, 그리고 나 모두 내추럴 와인을 좋아했다.


들어보면 아주 주관적이고 간단한 이유다. 나도 비슷했다. 이왕 가게를 한다면 좋아하는 것을 파는 게 더 즐거울 것이다. Y의 이런 이유와 Q의 저런 이유, 그리고 나의 그런 이유가 적당히 합쳐져 레이지비전은 내추럴 와인바가 되었다.


레이지비전은 이렇게 공개적으로 고백하기 머쓱할 정도로 사소한 동기로 시작했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기록이라도 해야 뭐라도 남을 것 같아 브런치를 시작했다. 글쓰기는 정리를 하고 행동의 이유를 찾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레이지비전은 정리가 필요한 무언가였다.


레이지비전은 '나는 좋았는데, 너도 좋아할지도 몰라! 와볼래?' 라고 수줍게 말하는 공간이다. 나에게는 퇴근하고 늦은 저녁, 편의점 가듯이 편하게 문을 열고 들이닥치고 싶은 공간이다.


2023년 7월 5일, 우리는 드디어 방배동 골목에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나는 궁금하다. 레이지비전이 어떤 흔적으로 우리의 삶에 남을지. 열심히 밀고 밀어 만들어낸 단단한 눈덩이가 저 언덕을 넘어 어디로 데굴데굴 굴러가게 될지.


그 나날을 기억하기 위해 레이지비전의 나날들도 느리고, 게으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록할 예정이다.


레이지비전 가오픈 완료.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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