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Y의 Lazy thought 첫 번째
01.업
오랜 시간 나를 지켜본 친구들에게 생각이 길(깊) 다는 이야기를 꽤 듣는 편이다. 돌다리가 부서지기 직전까지 두드리는 스타일이려나. 실패하더라도 빠르게 시도하는 인재를 선호하는 요즘 세상에 적합한 성향은 아니겠다. 공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에 난 직무를 고민하는 기간이 꽤나 길었다. 전공과 제일 연관된 직무는 제품디자인이고, 채용 시장에는 UI/UX 붐이 일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흥미는 다른 곳에 있었다.
시각디자인과 청강을 다니며 경험한 브랜딩 -컨셉으로나마 브랜드를 구축하는 과정 -이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과 결이 잘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나는 브랜드 디자이너가 되었고, 현재는 브랜딩 에이전시에서 일한 지 어언 7년 차에 접어들었다.
깊은 고민 끝에 내리는 결정은 후회가 없는 편이다. 현재까지도 나는 내 선택에 무척이나 만족하고 있고, 그동안 쌓은 역량은 Lazy Vision을 구체화하는데 큰 역할을 해주었다.
02.일관성
브랜딩이라는 단어가 내포할 수 있는 범위가 워낙 넓다 보니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브랜딩’은 언젠가부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느낌의 단어가 된 것 같아 아쉽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더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럼에도 브랜딩이 하나의 서사가 구축되는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점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업으로써 클라이언트와 브랜딩을 논하다 보면 일관성이라는 키워드는 빼놓을 수 없다. ‘브랜딩’이 곧 하나의 일관성 있는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고, ‘브랜딩을 잘하는 것’은 구축한 일관성을 잘 유지 혹은 업데이트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관점으로, 하나의 상업 공간이 만들어질 때는 공간에 일관된 하나의 컨셉을 녹여낸다. 인테리어 시장에서 한 때는 북유럽스타일이 유행하더니, 이젠 미드센트리모던이 제법 익숙해졌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스타일이 한 시기를 풍미할 것이다.
03.집과 편안함
집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언제나 뜨거운 감자인 매매, 전세 따위의 부동산 관점이라기보다 집이 주는 상(image)에 대한 이야기다. 소유의 여부를 떠나 내 집은 편안하게 느껴진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역시 집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이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요즘은 상업 공간뿐만 아니라 개인도 트렌드에 빠삭해지면서 일관된 컨셉을 자신의 집에 멋들어지게 구현한다. 하지만 ‘집’이라는 곳은, 하나의 스타일을 고집하여 만들더라도 살다 보면 좀처럼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집들이 선물로 받은 생소한 조형의 소품이 오히려 시선을 사로잡는가 하면, 쓰임새에 따라 실용성이 돋보이는 수납가구를 추가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인의 취미나 취향이 묻어나는 물건들이 더해진다. 조금은 낡아진 가구가 오히려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이러하듯 사람들, 시간들, 물건들이 쌓여나가면서 비로소 집은 어떤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된다. 집에서 오는 편안함은 일관성보다는 축적이다.
Lazy Vision은 이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위해 처음부터 하나의 비주얼 컨셉을 잡지 않는 것에 집중했다. 조금은 느긋하게 이 공간에 서사가 섞이고 축적되는 과정을 지켜보고자 한다. 이 공간은 와인바가 될 수 있고, 리빙샵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사유의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
Lazy Vision에서는 내 취향의 술을 권하고, 우리만의 메뉴를 낸다. 반가운 친구에게 소개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소개한다. 기꺼이 설레는 마음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준비를 하고 있다.
자연스러움과 편안함, 가볍게 놀러 가 서로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친구의 집처럼, 이곳에 오는 이들이 부디 각자의 사유와 함께 각자의 편안함을 얻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