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무게가 늘어나는 만큼 떨어지는 자존감

by 달과별나라

오랜만에 소개팅이 잡혔다.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소개팅이 잡히자마자 거울 앞에 섰고, 다시 체중계에 올라갔다.

숫자를 확인하자마자 뇌리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이 몸무게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급하게 다이어트를 해야 했다.

나는 인터넷을 뒤지며 가장 효과적이라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3일 물 단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단기간에 체중 감량이 가능하며 심지어 몸을 정화하는 효과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유튜브에는 성공 사례도 많아 보였다. 이거다 싶었다.


물 단식을 시작하기 위해 대형마트에서 생수 한 박스를 사 왔다. 그날부터 나는 오로지 물만 마시기로 결심했다. 하루 종일 물만 마시는 일이 처음에는 낯설었다.

배가 고프긴 했지만, 배고픔을 참는 건 익숙했다. 첫날은 비교적 견딜 만했다. 배가 고팠지만, 물을 마시면 잠깐이나마 배가 부른 듯한 착각이 들었다. 둘째 날부터는 조금 달랐다. 물만 마셨는데도 화장실에 자주 가야 했고, 몸이 점점 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미 시작한 이상 멈출 수 없었다.


셋째 날, 체중계를 보니 몸무게가 무려 6kg이나 줄었다. 바지가 약간 헐렁해진 것을 느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소개팅에서 조금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보식을 해야 할 차례였다.

물 단식 후에는 바로 일반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야채수프를 준비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따뜻한 야채수프를 한 입 먹었을 때, 속이 뒤집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곧이어 멈출 수 없는 구토가 시작됐다. 몸은 점점 더 탈진해 갔고, 결국 나는 응급실로 실려 갔다. 병원에서는 내게 "몸이 너무 무리했다"라고 말했다. 링거를 맞으며 머릿속은 복잡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다음 날, 겨우 몸을 추스르고 소개팅에 나갔다. 다이어트의 성공 여부가 나의 성공 확률을 결정할 거라 믿었지만, 역시 소개팅이 잘 되는 건 물 단식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작은 위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적어도 뚱뚱한 모습으로 나가지는 않았잖아..’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소개팅은 실패로 끝났고, 물 단식의 결과로 얻은 건 아픈 몸뿐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내 자존감은 내가 얼마나 가벼운 몸무게를 가졌느냐에 따라 결정되곤 했다는 사실이다. 몸무게가 늘어나면 내 자존감은 끝없이 떨어졌고, 줄어들면 잠깐 반짝였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곤 한다.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그 말은 내게 공허하게 들렸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체중계 위 숫자가 원하는 만큼 내려갔을 때뿐이었다. 내 모든 자존감의 원천은 몸무게와 내 몸이었다.


내게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은 마치 허공에 외치는 메아리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라는 뜻이겠지만, 그건 내게 불가능한 과제처럼 느껴졌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체중계 위 숫자가 원하는 만큼 내려갔을 때뿐이었다. 숫자는 내 가치의 척도였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나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기분이었다.


내 몸은 매일 나를 지탱하고, 숨을 쉬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데, 나는 단지 그것이 숫자 몇 개로 표현된다는 이유로 내 몸을 미워하고 있었다. 나는 어쩌면 지금까지 내 삶의 다른 영역에서 느껴야 할 자존감을 온전히 외모에만 의지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감사함을 느끼기, 몸무게와 상관없이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찾기. 여전히 쉽지는 않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여전히 내 자존감은 흔들리고, 몸무게에 따라 기분이 좌우될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안다. 자존감은 숫자가 아니라, 내가 내게 허락한 가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완벽해질 필요는 없다는 걸.

나는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나를 조금씩 사랑하게 되는 것임을.

어쩌면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한 연습을 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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