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 헤드가 발이 달려서 도망을 갔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아서 결국 다른 헤드로 바꿔 끼고 청소를 했는데,
입구가 좁으니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집안에 있을 텐데, 왜 못 찾는 걸까.
분명 이 집 어딘가에 있을 텐데.
히키코모리가 되고 나서는 사실 잘 안 씻게 되고, 청소도 잘 안 하게 된다.
그렇게 부지런하고 청결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진정한 히키가 아닐지도 모른다.
밖에 나갈 일이 없어지니 자연스레 청결에 대해 관대해지게 되고
무엇보다 귀찮아지게 된다.
물론 회사에 다닐 때는 눈뜨자마자 샤워부터 했었다.
그게 당연했고, 습관이었다.
집에 처박혀있기 시작하면서 눈을 뜨고 샤워할 필요성을 못 느끼다 보니
3일까지 샤워도 안 하고 머리도 안 감아 본 적이 있는데,
3일 정도 지나니 내가 못 견디겠어서 씻게 됐다.
그리고 청소는 더 안 하게 됐다.
싱크대가 폭발하기 직전에야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봉투가 쌓이고 쌓이면 들고나갔다.
그런 환경들이 더 나를 우울의 나락으로 이끌고 가는 것 같았다.
무기력할 땐 청소부터 시작하라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땐 청소를 하라고,
어디선가 보고 난 뒤로 청소하는 날을 조금씩 늘려갔다.
청소기도 없어서 빗자루로 쓸고, 걸레로 닦고 하다가 힘들어서
그래서 작고 저렴한 청소기 하나를 들였다.
비싸고 유명한 청소기를 사고 싶었지만,
뭐 그럴 형편도 안되거니와 집도 좁고,
청소를 언제 또 미루게 될지 모르니까.
내 작은 청소기는 열심히 우리 집 먼지들을 청소해주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던 청소는 이제는 이틀에 한 번으로 늘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발전 이다.
근데 발이 달렸는지 사라진 청소기 헤드.
어딘가에 있겠지. 이 집안에는 있겠지.
어서 빨리 나타나주길 바랄 뿐.
3일 내내 퍼붓던 비가 드디어 그치고,
날이 점점 풀리고 있다.
그래도 오늘도 청소를 했고, 산책을 했고.
새로운 계약을 했고,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