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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간 이유

by 달과별나라

다이어트 때문에 공복에 운동하다 토하고

헬스장 가는 게 너무 싫어서 운동할바에 하루 더 굶겠다를 시전 하던

운린이였던 나의 몸은 전부 굳어있었다.


그런 내가 살기 위해 요가를 돈까지 주며 시작했는데,

집에 오는 길에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기에 이르렀고,

다행히도 빠르게 손바닥을 짚어서 얼굴이 아스팔트에 갈리는 대참사는 막았지만

손바닥이 갈려 피가 철철 나기에 이르렀다.

집에 와보니 다리는 멍들고 손바닥에는 피가 철철 나는데

밴드를 붙여도 계속 떨어지고.. 속상했다.


그래도 나가고 싶었다. 나가고 싶고, 그만 불안해하고 싶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패턴을 다시 잡고 푹 쉬고 있었는데

하필 요가를 예약해 놓은 날 늦잠을 자버렸다.


화가 났다. 몸이 아픈 것도, 요가에 가지 못한 것도.

아주 늦은 시간에 일어난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속상했다.

그래도 씻고 나와서 화장을 했다.

정말 오랜만에 화장을 했다. 그리고 그냥 집을 나섰다.

20분 정도 강가를 산책하다가, 카페에 들어갔다.


햇빛이 통으로 들어오는 카페에는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같이 혼자인 사람들도 많았다.

사람냄새가 났다. 살아있음이 느껴졌다.


공황장애 약을 복용하면서부터, 이상하게 커피를 끊게 됐다.

이유는 모르겠다. 달달한 커피를 그렇게 좋아해서 하루에 2잔씩도 마셨는데

이상하게 약을 먹은 뒤로는 커피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커피와 멀어졌다.


달달한티 한잔과 샌드위치를 시키고 2층으로 올라가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이어폰을 빼고 카페의 소리에 집중했다.

도란도란 들리는 사람들의 수다 소리,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 그런 것들을 느끼면서 햇빛을 느꼈다.


그리고 나도 노트를 꺼내서 할 일을 이것저것 정리했다.

이상하게 집중이 잘됐다. 정신없이 일정을 정리하다 보니 1시간이 그냥 지나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왜일까, 카페에 가서 작업하는 사람들 보면 이해가 가질 않았는데

그 기분 좋음이 내 안에 스며들어오면서, 그런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느꼈던 것 같다.


히키코모리 프리랜서는 갈 곳이 마땅히 없다.

출근도 집에서 하고, 퇴근도 집에서 하니까. 그런 내 생활이 나를 좀먹고 내 몸과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

그저, 사람이 만나고 싶어서 그리워서 돈 주고 운동까지 끊으며 내 정신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카페에 간다는 건 또 새로운 자극이었다.


이걸, 여태 나만 몰랐던 건가?

아무도 날 보지 않는데도 오랜만에 한 화장이 날 기분 좋게 만든 걸까?

그냥 밖에 나갔다 왔다는 것 만으로 이렇게 조금 안정이 될 수도 있는 걸까?

신기하고 묘한 기분이었다.


아이패드, 맥북, 노트북 그 어느 하나 나에게는 없다.

그래서 카페에 들고 가서 작업할 기계는 마땅히 없지만,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카페에 가서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자그마한 노트북이 필요하겠지.


2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결국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빠르게 나왔지만,

운동을 못 가는 날이면, 이렇게라도 나를 달래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을 늘리고 나서, 안정이 잘 된다 싶다가도 가끔 또 무너지는 날들이 있다.

어제가 그랬다. 그래서 오늘은 꼭 나가고 싶었던 것 같다.

밖으로 나가고, 사람을 보고, 풍경을 보는 것으로 조금은 위안이 된다.


집으로 돌아와서 치렁치렁한 머리를 그냥 가위로 잘라버렸다.

일자로 뚝 잘린 머리가 웃겨서 웃음이 났다.

그래도 잘라내고 나니 뭔가 후련했다.


나의 불안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저번주 내내 운동하고 누워서 지내기만 한 것 같다.

푹 잘 쉬었으니, 이제 또 방법을 찾아내가면서 오늘도,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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