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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서 요가를 시작했다.

by 달과별나라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막히는 공황의 전조증상이 또다시 시작됐다.

밤낮이 바뀌고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일들이 겹쳐서

곧 다시 공황증상이 올 것만 같았고, 괜찮아졌다고 생각하자마자, 다시 나의 일상을 잠식했다.


그렇게 약이 먹기 싫었는데, 결국 복용량이 늘어났다.

이대로는 더 이상 약 없이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겠구나 하는 불안이

또다시 새로운 불안을 낳아 내 마음을 좀 먹기 시작했다.


일단은 나가야 했다.

이전에 나는 어떻게 살았지, 이전의 일상도 다를 게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왜 요즘따라 이렇게 극심한 불안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건지

온갖 유튜브를 찾아보고, 약을 먹고, 상담을 하고..

그래도 살고 싶었나 보다.


히키코모리의 삶이 더 이상 내 몸과 마음이 버티지 못하는 걸까,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직 운동이라도 해서 이겨낼 수 있는 정신이 있을 때 빨리 시작하기로 했다.


다이어트에 미쳐서 헬스를 다니거나 한 거 말고는

돈을 주고 운동을 한다는 건 정말 내 인생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살고 싶었는지, 돈을 주고 운동을 다니기로 했다.


헬스는 다이어트의 트라우마+너무 재미없음으로 절대 할 생각이 없었다.

산책은 자주해왔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밖으로 나갈 마음과

조금이라도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요가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집에서 걸어서 갈 만한 운동센터가

요가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운동 한 달 다니는데 이렇게 비싼 줄도 처음 알았다.

병원을 갔다가, 근처 센터로 가서 체험이라도 한 번해보려 했더니

원래는 체험하는데도 2만 원인데 공짜로 하게 해 주신다 하셔서 요가를 처음 했다.


얼마나 안 움직였는지 온몸이 굳어 있어서 힘들었다.

근데 정신이 아픈 내게 요가는 좋은 운동이었다.

천천히 호흡법을 익히고 안 쓰던 근육을 움직여주니 잡생각이 덜 들었다.


그래서 비싼 돈 주고 요가를 등록했고, 일주일째 다니고 있다.

물론, 매일은 못 가서 주 2회를 끊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 무조건 아침반에 나가고 있다.


살을 뺀다는 생각으로 하지 않고, 내 몸을 생각하고 정신이 맑아진다 생각하니 귀찮아지지 않았다.

요가를 가기 위해 30분을 걸어야 하는데,

산책도 하고 요가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오늘은 두 번이나 웃었다.


운동이 좋다는 말은 무수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내게는 운동이라는 것보다 일단 밖에 나가고 사람을 만나는 게 더 중요했던 것 같다.

매일이 아니라 주 2회라서 더 부담이 없는 것 같아서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갔다 와서 맛난 걸 해 먹고 푹 쉰다.

일에 대한 생각도 아픔도 불안도, 강박증에서 벗어나서 조금만 쉬어보려 한다.


히키코모리 생활이 길어지면, 정말 버티기 힘들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땐, 이런 식으로라도 나를 달래줘 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밖에 나가고 사람 만나기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결국 나는 나가고 사람을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친구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람이라는 건 장단점이 함께 오기 때문에 아직은 두렵기도 하다.


매일 자다 깨던 내가 이제는 7시간을 넘게 푹잔다.

매일 갈 체력이 된다면 매일 가고 싶지만, 일단 한 달은 2번만 가면서 다시 루틴을 잡아가려 한다.

감정일기도 다시 쓰고, 독서도 하고 폰게임도 하면서 푹 쉬고 있다.


이제는 쉬지 않고 달려온 나를 칭찬해 주고 예뻐주려 한다. 항상 감사하려 한다.

오늘만 생각하고, 오늘을 단단히 살아가다 보면 단단한 미래가 있을 거라고,

그렇게 눈이 녹고 봄이 오길 천천히 호흡하며 기다려보려 한다.

항상 그랬듯이, 살아있는 한, 알 수 없는 새로운 길이 또 시작되니까.


지금의 실패도 더 나아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니까.

내일도 운동을 가기 위해 푹 쉬고 일찍 잠에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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