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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말 불공평할까?

불안이 현실이 되었을 때

by 린 lin

나는 늘 공평과 불공평 사이를 오가며 살아왔다. 나에게 닥친 일, 혹은 내가 관찰한 일이 정당하다, 그럴만했다 등 세상에 이치에 들어맞는다고 느껴질 땐 대체적으로 세상은 공평하다 생각했다.


대표적인 게 '권선징악'


선하게, 착하게 산 사람에겐 그만한 복이 돌아오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은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 일을 볼 때, 또 부정적인 일이 까발려져서 공론화과 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사며 결국 나중엔 바로 잡히게 되는, 한 마디로 정의를 구현하는 순간, 한 마디로 뿌린 대로 거두는 상황들을 보면 대게 세상은 공평한 편이구나라고 여겼다.


반면 예고 없는 불행이 닥쳤을 때,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악하게 살아오지도 않았는데." 등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일이 닥치면 세상이 한없이 원망스럽고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삶에서 일어나는 비극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와 무관하게 그냥, 이유 없이 닥친다.


그럴 때는 “세상이 날 시험하나? 내 강인함을 시험하려 하나? 내 믿음을 시험하려 하나?”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혹은 “여태 너무 행복했기에, 복에 겨워서 이제 이런 시련이 오는 건가?”라는 생각도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답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공평하다고 밖에 느낄 수 없게 하는 시련이 닥쳤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받아들이고 맞서는 것뿐이다. 처음에는 누구나 부정부터 시작한다. 억울하고, 어이가 없고, 비통하고 분통하고 불공평해서 부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발악도 잠시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왜냐, 아무리 억울해도, 후회해도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부정 후에는 현실수용, 정면돌파의 과제가 하나씩 다가온다.


내 삶에 벌어진 일을 피할 방법은 없다. 문제의 종류에 따라 해결을 미룰 순 있어도 언젠가는 맞서야 한다. 빨지 맞설수록 좋다. 특히 현실적인 성향이 이럴 땐 꽤나 도움이 된다. 최악이라면 최악인 순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하나씩 실행해 나가는 것이다. 너무 먼 미래까지 내다보기보단 허들을 하나씩 넘는다는 심정으로 오늘 하루 내가 해야 할 우선순위들을 하나둘씩 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현실에 적응해 나가고 있는 나, 맞서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다음은 시간에 맡기는 것이다.


어찌 됐는 시간은 흐른다. 매일 일정하게. 째깍째깍.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누군가에겐 야속할지 몰라도 위기상황에 있는 사람에겐 그 자체가 치유며 위로가 된다. 그 현실을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의 충격은 점차 사그라들고 무뎌지며 지나온 시간 동안 그 어두컴컴한 터널을 이만치 지나온 나 자신이 뿌듯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불안이라는 건 미래에 대한 "가능성"으로 존재할 때는 막연하지만, 현실이 되면 상상 이상의 무게로 다가온다. 특히 내가 가장 원치 않는 상황, 가장 피하고 싶던 일이 현실화될 때 인간은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생각보다 인간은 잘 버티고 적응한다. "이건 내가 절대 감당 못 해"라고 미리 상상했던 것보다 실제 순간에는 오히려 생존 본능, 적응 본능이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장 끔찍한 악몽 같은 현실에서도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살아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진짜 무너짐은 오히려 인간을 다시 세우는 기회라고도 생각한다.


"위기가 곧 기회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실제 위기상황에 처하지 않는 이상 직접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하지만 진짜 위기라고 상상했던 일들을 마주하면 그 일을 통해 또 인생의 새로운 관점을 얻고 한 단계 성장하며 동시에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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