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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라 Feb 11. 2021

누군가에게 그리운 존재이고 싶다.

편지(便紙)



작년 11월 어느 주말 느닷없이 드라마 정주행 길에 나섰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짐작도 안 되고, 어제 일도 까마득한데 돌이켜 본들 기억도 없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 정주행의 시작이 ‘도깨비’라는 미니시리즈였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인가 당시 꽤 유명한 드라마였고, ‘공유’라는 키가 크고 멋진 배우가 나온다는 정도만 기억하고 잊고 지냈습니다. 한류가 어느 때보다 전 세계적인 이슈여서일까, 영드, 미드를 포함한 드라마 순위에서도 나오는 작품마다 우리나라가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인기가 대단합니다. 그런데 요즘 핫(hot)하다는 수많은 트렌디한 작품들을 마다하고, 제목마저 고풍스러운 ‘도깨비’를 고른 것은 우연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도깨비’와 ‘사람’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드라마 작가는 천재인 걸까요? 시공을 초월한 인연(因緣)의 스토리를 엮어내는 상상력과 내공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직장 동료들에게 유행이 지나도 한참이 지난 ‘도깨비’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공유’라는 배우가 정말 매력 있고 스타일이 멋지더라는 말을 하니 다들 한 마디씩 거들며 사무실이 떠들썩합니다. ‘공유’가 멋진 걸 이제야 알았냐고 말입니다. 뒷북이 심해도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잠시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나이 오십에 생애 처음 ‘공유’라는 배우를 직접 만나 친필 사인도 받아야겠다는 작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아니, 방송 리포터나 잡지사 기자처럼 갓 내린 드립 커피를 마시며 공원을 산책하며 담소를 나누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치렁치렁 긴 코트를 걸치고 그토록 찬란하게 눈부신 남자를 나의 생활 반경 안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도깨비’는 어릴 적 읽은 혹부리 영감이란 전래 동화에서도, 철 지난 드라마에서도, 그리고 내가 사는 현실에서조차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반곱슬 넘실대는 머리 스타일에, 촛불이나 라이터 불을 켜고 ‘후~’ 불기만 하면 ‘짠!’하고 나타나는 마법이라니... 어떻게 반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성질이 비슷하긴 하나 이미 알라딘의 ‘지니’는 비주얼에서 비교의 대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깨비’를 만난 건 2018년 1월 미서부 여행 중이었습니다. 벨소리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멜로디가 신비롭고 아름다워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드라마가 처음 방송되던 때가 2016년 12월부터 2017년 1월까지였던 것을 보면 벨소리의 주인공도 꽤나 ‘도깨비’ 팬이었던 모양입니다. 당시엔 어떤 곡인지도 몰랐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지만 잠깐씩 들리는 그 음악은 장거리 여행의 고단함에 위안을 주고 한편으로 마음 깊은 곳 어딘가를 울리곤 했습니다. 그랜드캐니언과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둘러보며 자연이 빚어낸 웅장함과 감동 덕분에 더 큰 울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는 본 적도 없었는데 그 잠시 울리던 선율이 왜 그토록 마음이 시리도록 아프고 애절하게 전해졌던 걸까요.


                                    

                                ㆍ      ㆍ       ㆍ

올 초 오랜만에 꽃다발을 받았습니다. 이름 모를 작은 송이 흰색 꽃과 연보랏빛 튤립이 여리여리 어우러진 예쁜 꽃을 보니 마음이 다 환해졌습니다. 꽃을 많이 좋아하지만 일부러 꽃을 사서 꽂는 정성을 쏟지는 않습니다. 철 따라 꽃을 피우는 가로수며 길가에 이름 모를 꽃에 눈길을 주고 감탄하는 것에 만족하는 터라 간혹 이렇게 꽃 선물을 받으면 선명한 꽃 빛깔만큼이나 기분이 날아갈 듯 상쾌해집니다. 꽃만으로도 더없는 행복인데 은은한 향기와 함께 꽃을 감싼 포장지에 작은 집게로 집어 놓은 손편지가 눈에 띕니다. 세 칸으로 나누어 한 명씩 마음을 담아 쓴 글이 보입니다. 글을 찬찬히 읽으니 삼인 삼색(三人 三色) 손글씨를 따라 그 마음이 가닥가닥 전해집니다.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편이라 꽃다발을 받아 들고 얼굴에 무척 표가 났을 텐데 괜스레 낯이 부끄러워 글을 찬찬히 되짚어 읽으며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습니다.      



졸업식 전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를 담기 위해 여러 차례 쓰고 고치고 눈물을 참아가며 영상편지를 녹음했습니다. 녹음을 하는 중에, 하고 싶은 말이 거의 외워지고 더러는 빠지고 보태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손편지가 아닌 영상편지여서, 덕분에 이별의 아쉬움이 목소리의 떨림과 함께 훨씬 더 잘 전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영상으로 남았으니 그 날의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담임을 했던 여러 해 중에 유난히 예의도 바르고 착실한 아이들과의 작별 인사였습니다. 최종 녹음된 영상편지에는 원본에 없던 이 말이 실렸습니다.  

    


‘여러분에게 좋은 추억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그대들에게 '내'가 '그리운' 존재로 기억되길......

나에게 그대들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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