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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라 Feb 10. 2021

취미가 뭐예요?

숨은 그림 찾기


"취미가 뭐예요?"


이런 질문을 받은 지가...... 피식하고 미소가 올라온다.

상큼한 레몬향이 톡! 하고 올라오는 탄산수처럼, 화장기 하나 없이도 풋풋하고 탱글한 피부가 빛이 나고,  몰라도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꼬꼬마 시절에나 들어본 말이 아닌가. 이 질문 하나로도 지난 순간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보니 상당히 마법 같은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이때 내가 주로 한 대답은 '음악 감상'이나 '영화 감상'이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우리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여가 활동이기도 했고, 나는 진심으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떤 것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과 열정, 공을 들이는 '마니아(mania)'적 성향과는 거리가 있었기에, 나에 관해 어떤 부가적인 주석이나 설명이 되기에는 충분치 못한, '나도 너와 별반 다르지 않아.'라고 말해주는 그런 취미였다.


취미(趣美) :

1.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하는 일

2.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3.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


3년 사이 놀이 삼아하는 것이 하나둘씩 늘었다. 그리고, 점점 관심 가는 것들이 많아지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어리둥절 목적지로 걸어가던 20대, 육아와 출퇴근으로 씨름을 한 30대와 40대를 보내고,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낸 지 갓 50년째. 아이가 셋이라 손이 가고 챙겨야 할 것들이 많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혼자서 무언가를 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졌다. 대학 때나 미혼 시절 미팅이나 소개팅에서 고향이 어딘지, 사는 곳은 어딘지, 시간이 날 땐 주로 무엇을 하는지 서로의 취향을 맞대고 미래의 가능성을 점쳐보는 작업을 했지, 지금이야 누가 내 눈을 들여다보며 수줍게 호기심 어린 미소를 띠고 여가시간에 뭘 하는지 궁금해할까. 이런 게 바로 '안물 안궁(No Concern)'. '지나친 관심과 정보(TMI_Too Much Information)'가 스트레스가 되는 일상에서 아무도 나에게 '안 물어보고 안 궁금하다'라고 하면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요즘 '안물 안궁' 모임이 유행이라고 한다. 와! 정말 신박한 아이디어 아닌가? 나이도, 먹고살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도 말하면 안 되는 것이 룰! 공통의 취향과 관심사에 관해 대화를 나누되 개인적인 대화는 허용되지 않는 곳! 3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지만, 나이조차 모르고 모임의 목적 외에 블라인드(blind)인 채로 수평적 관계가 이루어지는 곳! 이해관계가 없으니 눈치 볼 것도 없고, 주제에 관해 오롯이 집중하고 편견 없이 열정적 에너지를 발산하며 무엇보다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날개를 다는 곳! 아! 나도 당장 달려가고 싶다. 이거야 말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진짜 나'와 '진짜 너'를 만날 수 있는 신세계 아닌가.





좋아하는 것 하기



나는 시가 좋더라.

읽기도 좋지만 쓰기도 좋더라.

아무 때고 마음에 반짝하고 불이 켜지면

상쾌한 아침 공기, 복도 가득 모닝커피, 시원한 빗줄기,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시가 되어 나오더라.


어느 봄, 벚꽃 나리는 버스 정류소

기나긴 지루함은 어느새 사라지더라.

걸으며 떠오른 시상이 가슴에 가득하여

버스가 오도록,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걸으며, 또 쓰고 또 다듬어

코지 홈, 한숨 돌릴 새도 없이,

창조와 완성의 환희에 사로잡혀

'돌려 깎기' 힘든 것 알아차릴 사이 없이,

벅차오르는 그 순간이 심장에 꽃을 피우더라.


                                                                                                   2021.1.23. 토요일






가끔 시를 쓴다. 주로 퇴근길 버스 정류소에서 시작한다. 2년 동안 절친이었던 길 건너 맞은편 버스 정류소와 작별하고 벚꽃길 정류소와 친구 먹은 지 1년쯤 되었나 보다.  


2년 지기는 아파트 단지와 아담한 규모의 상가가 자리 잡아 퇴근 시간 무렵이면 제법 북적이는 곳이다. 목이 마르면 물을 사 마시고, 떨어진 당을 채워줄 사탕이나 젤리를 사 먹던 편의점과 늘 그 자리에 있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부동산, 핸드폰 가게, 아이들 방과 후를 기다리는 영어와 수학학원, 그리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점포들. 그런데, 건너편에서 무심코 바라보니 그 친구는 이전에 내가 알던 익숙한 친구 모습과 달라 보였다. 오히려 쓸쓸해 보인다고 할까? 반듯반듯 네모난 건물과 버스 정류소, 그리고 그 옆에 대여섯 대의 택시가 줄지어 있고 손님을 기다리는 기사님들이 모여 담배도 피우고 담소를 나누는 풍경. 게다가 작년 언젠가 싹둑싹둑 잘라낸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아파트 건물처럼 네모난 모양으로 다듬어져 답답하고 어색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2년간 알고 지낸 그 친구는 오간데 없다.



한편, 드문드문 고요한 1년 지기 버스 정류소.

도로 쪽으로는 플라타너스, 주거지 쪽으로는 풍성한 벚꽃 가로수가 길게 뻗어 있고 인도에 울타리 역할을 하는 관목수가 사람 손길이 닫지 않은 채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퇴근길, 잠시 머문 그곳에서 예상에도 없던 사계절을 온전히 누리는 호사로운 시간을 가졌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나 하나뿐. 솔솔 간질이는 바람을 맞으며, 흩날리는 벚꽃잎을 밟으며, 때론 칼바람에 코트 깃을 세우며, 나도 몰래 시상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 아까 낮게 그런 일이 있었지.'

'올라오던 길, 우산 쓰고 걷던 그 순간을 담아 볼까?'



꼭 좋은 기분만 시로 쓰는 건 아니다. 마음이 불편한 날에는 '그런 이유'로 '그런 나'를 담은 시를, 살살 다듬고 고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쓰고 또 쓰고 빼고 보태어 시를 쓴다. 산문과 달리 몇 마디 말로 생각을 모아서 담으려니 꼭 필요한 핵심만 추려서 쓰고 고치고 다듬는 재미가 쏠쏠하다. 거기다 손글씨 아닌 핸드폰 앱에서 예쁜 그림을 골라 편지지에 글 쓰듯 바로 쓰고 고쳐내면 뚝딱 빠르기도 하고 보기도 참 좋다.







내키면 펜 스케치도 어설피 따라 해 보고, 수채물감으로 꽃잎, 열매도 물들여보고, 붓펜으로 휘갈겨 캘리그래피도 써본다. 좋은 글과 책을 읽으면, 선명한 고운 빛깔 펜을 써서 가슴에 새기려 천천히 힘주어 필사도 해본다. 온라인 오픈 강좌에 참석해 새로운 분야를 탐색하고,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고 웃고 떠든다. 낯선 사람들과 얼굴 박치기라니,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 매일 밤 불 꺼진 방에 누워, 3분이 멀다 하고 깜박이며 줄지어 오는 비행기를 눈으로 좇으며 가슴이 설렌다. 새벽엔 반대쪽으로 줄지어 가는 비행기 배웅하기, 가끔 손도 흔들어 주기.


아! 아직도 너무 많아, 하고 싶은 일들이......

그러고 보니 아마도 난 잊고 있었나 보다. 이 세상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이미 다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서 하나둘씩 찾아내는 중인 거다.


끝도 없이 나를 설레게 하는 숨은 그림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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