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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소다 Mar 24. 2020

우리 안에서 영원히.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이별만큼 상대방에 대해 오롯이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 또 있을까. 하물며 죽음은 이별 중에 가장 강력한 이별이리라.  


 얼마 전,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렀다. 회사에서는 직계존속의 상이라고 가장 긴 휴가인 5일의 휴가를 주었다. 그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친가쪽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도 내가 아주 어릴 때 잃은 까닭에, 내게 기억을 할 수 있는 조부모란 외할아버지 단 한 분뿐이었다. 어릴 적에는 외할아버지와 여행도 함께 다니곤 했는데 최근들어서는 생일과 명절에도 교류가 드물었다. 거리가 멀 않았음에도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얼굴을 잊어버릴 만할 때즈음에서야 겨우 뵙곤 했다. 그래서인지 생각만큼 슬프지도 않았고, 떠올릴 추억 또한  별로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냐고 하면, 풀어낼 이야기가 많지 않다. 문득 내게 직계존속이 이제는 부모님 두 분만 남았다는 것과 더불어, 이렇게나 가까운 사이임에도 죽음이 덤덤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이 퍽 슬펐다.

 

 불과 작년 초까지만 해도 무척 건강하셨던 분이었는데. 외할아버지는 노인이라면 흔히들 떠올릴 법한 여느 텔레비전이나 매체에 등장하는 허리가 굽고, 쇠약하고 기운 없는 모습이 아니었다. 어디서나 당당하셨고, 항상 곧은 자세로 계셨으며, 자기계발을 위해 꾸준히 힘쓰셨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셨고,평생을 업으로 삼아온 태권도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태권도 행사에서 찍은 단체 사진만 보아도 유달리 위풍당당한 사람이 우리 할아버지였다. 또한 그토록 정정함에도 백오십살까지 살겠다며 건강 관리에 신경썼다. 그래서 정말로 우리는 백오십살까지 사실 줄 알았나보다.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질병과 죽음은 너무 낯설었다.


 따지고보면, 그렇게나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니었다. 작년 말 한번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요양 병원에서 회복을 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수술을 마친 모습을 뵙고, 병원은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지 못했는데 한번은 더 뵐걸 그랬다는 후회가 든다.


 흔히 살아오면서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몇명이나 오고 얼마나 슬퍼할까 라는 생각을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평생을 태권도 업계에 몸담으셔서 빈소에 근조화환이 꽤나 많이 들어왔다. 유행병이 도는 탓에 화환 수에 비해 빈소를 찾은 사람들은 많지 않아 안타까웠지만. 할아버지가 그만큼 생을 충실하고 치열하게 살아오셨다는 증거일 것이다.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서울 생활을 하셨다. 스치듯 희미한 기억으로는 어느 날,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강에 비치는 대교의 색색깔의 불빛을 보며 서울의 아름다움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 당신이 사는 서울을 사랑하시는 구나 했었다. 그리고 나도 작은 것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내 일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매년 새해가 되어 세배를 할 적에는 맏이라며 동생들보다 한장씩 더 주시곤 했었다. 그러고보니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는데도 용돈 한번 못드린 게 죄스럽기만 하다. 


 여러 분야에 배움이 많아 작명도 하셨는데 우리 사남매의 이름도 손수 지어주신 것이다. 물론, 사촌들의 이름도. 그래서 외할아버지가 당연히 내 자녀의 이름도 지어주시겠거니 했는데. 김연수 작가의 수필 속 어릴 적 아버지가 작가를 자전거 앞자리에 태우고 다니셨고, 이제는 작가가 어린 자녀를 자전거 앞자리에 태운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는 아버지에게 받은 가장 소중한 것이라며 얼굴에 닿는 바람과 불빛과 거리의 냄새를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부모가 떠나더라도 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는다. 내게도 또한 할아버지의 흔적이 엄마를 통해 내려왔을 것이고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대물림될 것이다.


 비록 외할아버지의 생은 마감하셨으나, 내 안에서, 우리 가족 안에서, 가문 안에서 영원히 살아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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