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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람 Oct 29. 2020

8. 공포증, "밖에 나가고 싶은데"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다.


 잘 지내던 친구들과는 그 당시 유행했던 방탈출 카페에 자주 다녔다. 컴컴한 공간에 갇힌 상태에서 시작해 불을 켜고 힌트를 찾아 탈출구를 찾아내는 게임은 실감 나는 세트장일수록 재밌었다. 처음엔 두뇌를 쓰는 소재 위주로 등장하던 방탈출 카페는 자극적인 것을 찾는 사람들 때문인지 공포 테마가 성행했다.

 한국에 귀국하자마자 나는 방탈출이 하고 싶다며 친구들을 모았다. 좁은 공간에 갇혀 게임을 하던 도중, 장소를 이동하자 빨간색 물감이 잔뜩 칠해진 욕실이 나타났다. 그 순간 나는 S양과 그때의 일이 생각나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쥐와 토끼를 죽일 자신이 없어진 나는 대학원을 자퇴하기로 했다. 막상 그만두자니 앞날이 캄캄해져 공기업 채용 박람회에 참가했다. 인기 있는 공기업은 줄도 길었고 사람도 빼곡해 인파에 휩쓸리기 십상이었다. 돌아다니는 내내 연신 헉헉거렸다. 호주에서 너무 먹고 놀았나? 아니, 그렇다고 하기엔 다이어트로 6kg 정도 감량한 상태였다.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몸은 내 머리와 다르게 움직였다. 밭은 숨을 내며 오가던 나는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저녁 즈음 잡힌 면접 특강을 포기하고 귀가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2시간 30분을 걸쳐 나왔으니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전 남자 친구가 된 호주인으로부터 S양의 SNS에 자기가 바람이 나서 자살 시도를 했다는 거짓말이 올라왔다는 연락이 왔다. 분명히 차단했는데 새로운 계정을 만든 건지 S양은 내게 "괜찮아?"라는 카톡까지 남긴 상태였다. 대답할 할 말이 없었다. 화장실 사건을 힘겹게 차치하고서도 뒤에서 내 험담을 줄기차게 하고 다녔다는 것, 정에 약해 사람을 잘 놓지 못하고 웬만한 부탁은 다 들어주는 내 성격을 이용한 행위들은 인연을 정리할 이유로 충분했다.

 손발이 덜덜 떨렸다. 처음엔 화가 나서 그런 줄 알았다. 나는 이전에 우울증 진단을 내렸던 병원을 다시 찾아가 근황을 이야기하고 화장실 사건에 대해 알렸다.


"혹시 최근에 숨쉬기 힘들었다거나 하는 경험은 없었나요?"

 

 나는 냉큼 끄덕였다. 채용 박람회부터 방탈출 게임, 그리고 그가 연락을 했던 시점까지 서술하자 몇 가지 질문이 더 오갔다. 그때서야 나는 내게 없던 공포증이 생겼음을 알게 됐다.

 광장 공포증과 폐소 공포증, 어찌 보면 반대가 되는 성향의 공포증이 한 번에 나타난 것이다. 집이나 방 정도는 괜찮았지만, 당장 문이 닫힌 룸카페나 좁은 가게는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답답했다. 그렇다고 사람이 많고 넓은 곳에 가면 그건 또 그거대로 문제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아예 바깥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그때, 우리가 날 비웃었다.




 나아지고 싶었다. 우리를 이기고 싶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왜 자꾸 나를 괴롭히는 일만 생기는지 몰라 너무 억울했다. 딱히 나쁘게 산 것 같지는 않은데. 혹시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큰 죄를 저지른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 태어나서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나와 함께한 것일까.

 어느 추운 겨울날, 어떻게든 외출이 하고 싶었던 나는 두꺼운 니트와 패딩을 입고 목도리까지 꼭 여미고 나섰다. 하지만 걸음은 중문 앞까지만 도달했다. 나가고 싶은데 나갈 수가 없었다. 도무지 현관문을 열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대로 바닥에 앉은 나는 한 시간이 지나고서야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원인을 파지 말라고 했다. 그의 말마따나, 근원을 찾고자 하면 향할 데 없는 분노만 차올라 마음이 힘들었다. S양을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둬버렸다. 대신 그를 이길 수 있도록 내 삶을 고쳐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채용 박람회에서 가져온 팸플릿과 책자를 모두 펼쳤다. 전공을 살려서 할 수 있는 일도 있었고, 새롭게 배워보면 좋을 일도 많았다. 마치 워킹 홀리데이를 결심했을 무렵처럼 또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취업이 아닐지라도 좋다, 내가 하루빨리 나아질 수 있는 길을 찾아 걷고 싶었다.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우리는 공포증을 꼬집었다. 비로소 쪼개어져 보이는 '우리'의 형체에 나는 안도했다. 느리게나마 나를 되찾아가고 있다는 확신은 달리고 싶어 한다는 욕구에서 기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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