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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람 Oct 29. 2020

7. PTSD,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다.

 전화한 이는 S양의 남자 친구였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S양을 찾고 있었다. 평소에도 시끄럽게 싸우고 자주 찾아오는 바람에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나는 신경질적으로 대꾸했으나, 이내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의 부탁대로 S양의 방에 갔다. 방 불은 훤히 켜져 있지만 아무도 없었다.


"집에 없는데. 어디 나간 것 아냐?"


 책상엔 영어로 적힌 편지 같은 것이 보였다. "자살하려는 것 같아, 어디로 갔는지 찾아줘." 그의 목소리에 나는 내가 발견한 것이 그를 향한 유서임을 깨닫곤 분통을 터뜨렸다.

 실상 S양과는 사이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 상태였다. 남자 친구를 1주일에 5번만 데려오라는 호의 넘치는 부탁에도 그는 나를 욕하고 주변에 악담을 퍼뜨렸다. 내가 먹지도 않는 음식을 사서 강제로 반 값을 내게 했으면서, 같이 쓰는 물건을 사 와도 자긴 쓰지 않겠다며 나만 소비하게 했다. 하지만 그는 내 물건을 몰래 사용했고 공교롭게도 그건 너무나 훤히 티가 났다. 입주했을 무렵엔 큰 방을 차지하고서는 자기 방이 내 방의 두 배나 크니 전기세의 80%를 내겠다고 했지만 똑같이 절반만 냈다. 수도세를 아끼자고 빨래는 몰아서 했지만 내가 일을 할 적에 몰래 세탁기를 돌리기도 했다. 자기 실수로 의자를 부숴놓고도 변상을 피하려 내게 알리지 않았다.

 그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S양과 남자 친구와의 관계였다. 싸우기라도 하면 벽에 머리를 쿵쿵 박아대고 울고불고 소리를 질러댔고 사이가 좋으면 놀러 와서 시끄럽게 놀았다. 어디 그뿐이랴, 옆방에 뻔히 친구가 있는데 다 들릴 정도로 뒤엉켜 놀기도 했다. 지긋지긋하고 징그러웠다.

 가까스로 좋게 띄워낸 기분에 먹칠을 하는 두 남녀의 행동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은 당연했다. "S가 동영상을 보냈어, 화장실에 있는 것 같아." 그 말에 나는 화장실로 뛰어가 문고리를 돌렸다. 문은 잠겨있었다.


"잠겨있어."

"거기 있는 것 같아, 제발 열어봐."

"잠겼다고!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


 죽 영어로 말하던 입이 모국어를 내질렀다. "너네 둘이 싸울 거면 둘이 치고 박던가 왜 내가 다 수습하고 이 지랄 난리에 휘말리게 하는데!"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격앙된 언어에 대고 그저 사과만 했다. 자기가 다 잘못했으니 S양을 살려달란다. 잠긴 문을 덜그럭거리던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외출이 잦아 걱정했으나 다행히 그는 집에 있었고, 곧장 이쪽으로 넘어와 잠긴 문을 열어주었다.

 1인용 샤워 부스, 거기엔 두꺼운 멀티탭 전선으로 목을 맨 S양이 있었다. 소중한 사람이 아니게 되었기에 걱정되지는 않았다. 화가 나서 비명을 질렀지만 집주인의 눈엔 놀란 룸메이트로 보였겠지. 나와 집주인의 남편이 그를 안고 내렸다. 딱딱하게 굳어가던 몸의 감촉이 팔 안에 가득 실렸다. S양은 타일 바닥에 그대로 눕혀졌다.

 집주인의 신고로 그는 무사히 중환자실로 옮겨져 목숨을 부지했다.

 



 S양은 자존심이 높고 자존감은 낮은 타입이었다. 화장실 사건이 벌어지기 2주 전, 그는 남자 친구에게 두통약 100개를 먹고 죽겠다는 협박 문자를 보냈다. 새벽에 남자 친구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들이닥쳤고 다행히 약을 먹기 직전이었던 그는 우울증이 의심된다며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하지만 그는 병원에서 처방해준 우울증 약을 먹지 않았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차원이 다른 민폐에 나는 생각을 멈추었다. 난 의사가 아니다. 잊고 살았지만 나 또한 환자니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S양은 굉장히 영악했다. 중환자실에서 눈을 뜬 후엔 1년 정도의 기억이 없다며 기억상실증에 걸린 연기를 했다. 헛구역질이 났다. S양의 남자 친구는 S양과 헤어지고자 "우리는 이미 헤어진 사이"라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S양의 기억은 온전했기에 그에게 화를 냈고, 나중엔 고작 2개월 전의 일―S양은 남자 친구와 호화로운 파티에 초대된 적이 있었다―을 말해 그동안 연기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시인한 격이 됐다.

 상황 설명을 모조리 들은 집주인은 내 처지를 불쌍히 여겨 집세도 받지 않고 자기 집에서 지내게 했다. 그게 너무 고마웠던 나는 그들에게 더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거처를 옮기기로 했다. 내가 저지른 게 아닌 피해에 마음이 무거웠다.



 다급히 타지로 온 S양의 엄마는 내게 일말의 미안함도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나로부터 무언갈 받기만을 원했다. 그 엄마에 그 딸이었다. 그는 S양의 남자 친구에게 연락해 "내 딸과 다시 사귀지 않으면 나도 같이 죽을 것이다"라는 끔찍한 말을 남겼다.


"아주머니, 저한테 연락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연락 오는 거 보면 너무 역겨워요. 저한테 미안하긴 하셨어요?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혐오감을 비췄다. 가게 사람들은 내 얘길 듣고 심한 말을 했다고 날 비난했지만, 나로서는 무리도 아닌 반응이었다. 정에 약해 상대의 배신이 아니라면 먼저 연을 끊어본 적이 없던 내가 최초로 선언한 절연이었다. 아주머니는 그때서야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고 더는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지겹도록 악몽을 꿨다. 한인이 운영하는 병원에 찾아가 정신과 진료를 봤는데, 선생님은 내가 앓고 있는 것이 PTSD라고 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악몽을 꾸지 않는 것이 이상한 거고 도리어 바로바로 증상이 나타나는 쪽이 훨씬 나은 거라고 위로해주셨다. 그 후 한동안은 수면제를 먹어야 잠들 수 있었다.




"너무 미안한 말인데 S양이 그런 짓을 했다는 건 비밀로 해주지 않을래?"


 내 연락을 받은 다섯 중 하나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S양이 안타깝단 마음은 들었지만 엄연히 피해자는 나였다. 죽고 싶으면 어디 나가서 죽던가 왜 내가 사는 곳에서 그런 짓을 저질러, 왜. 자살에 대한 생각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재수하던 그 시절, 만약 지하철 선로로 뛰어들어 죽었다면 지하철을 운전한 사람, 시체를 치울 사람, 지하철 운행 중단으로 피해 본 사람 등 여러 가지로 난리였겠지. 소름이 돋았다. 단순히 가족과 친구들에게 미안할 짓이 아니구나. 호텔에서 죽는다면 그 호텔 이미지에 타격이 생긴다. 어쨌거나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행위라는 것엔 변함이 없다. 

 나 또한 우울증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용서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내 주변을 그렇게 망친 적은 없다고 믿었기에 마냥 분했다. 고소해서 몇 천만 원이고 뜯어내고 싶었다. 어떻게든 내 상처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미친년 하고는 엮이면 안 된다며 여기서 연을 끊도록 했다.


"악연도 연이야, 엮이지 않아야 끊을 수 있어."


 그래서 조용히 정리했다. 주변엔 무슨 소식이 들려와도 내게 S양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라면 나와의 연을 정리해달라고까지 말했다. 나를 오랜 시간 지켜본 친구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절교는 자기 손으로 해본 적이 없던 애가 강하게 나오니 한 발 물러서는 듯했다.

 대부분은 나를 걱정했다. 하지만 S양을 걱정한 그 친구 하나와는 머잖아 연이 끊겼다. 아마 그는 S양을 더 믿은 모양이다. 부디 피해를 겪지 않길 바라면서도, 이런 당연한 일에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이후로 겪은 온갖 정신질환 덕분에 나는 S양에 대해서는 극도로 편협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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