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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혼의작가 Sep 16. 2021

이직의 경험(2) - 승무원 라이프

사실 나는 항공사 승무원으로 뼈를 묻고 싶었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항공사 승무원이 되었다. 저비용 항공사이고 회사의 자본이 많지는 않아서 복지나 급여가 높지는 못했다. 그러나 항공사는 나에게 좋은 직장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꿈을 실현하는 꿈터여서 무한 긍정의 자세로 일을 했다. 사랑하게 되면 그렇다. 한 마디로 콩깎지가 씌었었다. 자본력이 있는 대형항공사의 시스템을 따라갈 수 는 없지만 내가 하는 비행에서 만큼은 승객에게 무한 정성과 감동을 선사하고 싶었다. 그러한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은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었고, '회사가 작으면 어때? 회사를 키우면 되지' 하는 호기로운 생각도 많이 했다. 동기들의 회식 모임에 나가면 핀잔을 받기도 했다. '오늘도 회사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야기 하려면 조용히 있으라'. 원래 긍정적인 편이긴 하였지만, 첫 직장이기도 하고 또한 나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어서 내가 너무 긍정적이었던 것은 인정한다. 


 비행이외에도 많은 일을 했다. 나는 그게 나쁘지 않았다. 언제나 다양한 활동과 만남속에서는 배움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행업무를 수행함은 물론이고, 지상 스텝으로 필요한 업무들도 담당을 했다. 객실승무원 업무 교범 및 방송 교범 개정업무, CRM(Crew Resource Management) 사내 교관, 보안교관 등의 업무를 병행했다. 사무장이 되어서는 후배들의 교관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고 실천 및 실험하기도 하면서 계속 꿈꾸고 꿈을 실현했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나의 리즈 시절을 생각하면 그때가 아닐까 한다. 몸이 아프다가도 비행을 하면서 승객들과 소통하면서 서비스 하면 에너지가 충전되기도 하였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가 항상 있었다. 항공 서비스와 연예 하고 있었으니까. 홈페이지에 승객이 칭찬글을 남겨주면 해당 비행의 승무원이 그에 대한 답글을 남겨주게 되어 있었다. 손님이 5줄 남기면 나는 10줄 20줄을 남겼다. 비행은 끝났지만 답글로 서비스를 할 수 있으며, 즐거웠다. 


  비행을 하다 보니, 생일이나 기념일에 제주도로 여행을 가는 손님이 많았다. 이 특별한 날에 무얼 해 드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때는 엔터테인먼트 서비스가 있어서 음료서비스 후, 풍선아트, 사진 찍어주기, 마술 등을 서비스 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승무원들이 진행하는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였다. 그것으로도 좋았지만 무언가 더욱 특별함을 드리고 싶었다. 생일자를 위한 깜짝 선물이나 항공사 엽서 등이 있으면 좋을텐데 신생항공사에서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엽서를 가지고 다녔다. 비행 중 생일이나 기념일을 맞이한 손님께 깜짝 생일 엽서를 드렸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무언가 좀 더 정성을 담고 싶었다. 기내에서 처음에는 승객과 승무원. 서비스를 하는자와 받는자로 만나지만, 대화를 하고 소통이 시작되면 짧은 비행시간이지만 그 이상의 감동이 있다. 그것을 받는 손님의 입장에서도 기분 좋았지만,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 또한 매우 기쁘고 가슴이 따뜻해 졌다. 


  국제선이 아직 취항하지는 않을 때여서, 제주도를 왔다갔다 하는 국내선이 전부였다. 그렇다 보니, 제주로 처음 갔을때 만났던 손님을 복귀편에 다시 만나는 일도 있었다. 비행기 기종이 ATR-72 (터보프롭 항공기) 였다. (한성항공, 제주항공이 초기에 터보프롭 항공기를 이용했었다. 이후 저비용항공사 들이 더 생기면서 제트기로 바꾸었다. 현재는 국내 항공사 중 '하이에어'가 이 터보 프롭 기종을 사용하고 있다.) 승무원 두명이 탑승하며 승무원 좌석이 항공기 앞, 뒤 출입구에 위치해 있다. 항공기 앞에 있는 승무원 좌석에 앉는 경우 1열의 손님들과 마주보고 앉게 된다. 승무원에게 궁금한 것들을 먼저 물어보는 손님도 있고, 승객이 너무 피곤해 하지 않아 보이면 승무원이 먼저  말을 걸기도 한다. 그렇게 손님과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 짧은 순간이지만 승객과 승무원 모두에게 즐거운 추억이 된다. 비행을 마치고 나서 간혹 기내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손님들은 자전거 여행을 잘 마치고, 또 가족들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한 번 만나고 스쳐가는 순간일 수 도 있지만,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는 편에 만났던 승객에게 돌아올 때도 사후 서비스를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Suprising Letter'를 써 보았다. 


 " 000 손님, 출발편에서 만났던 승무원 입니다. 제주도 여행 전, 기내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아무런 부상없이 즐거운 추억 만드셨는지요?  저도 다음에 제주도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쁜 여행일정 마치시느라 피곤하셨을텐데 힘내시라고 이렇게 깜짝 편지를 준비해 봤습니다. 피로회복에는 비타민 C가 좋고, 따뜻한 녹차는 마음을 여유롭게 해준다고 합니다. 제가 소소하지만 작은 정성으로 준비했는데요. 여독 잘 푸시고 저희 한성항공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이러한 컨셉이었다. 제주도의 여행은 왕복편이기 때문에 출발편에서 승객분께 여쭈어 보면 복귀시간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비행하는 편에서는 내가 전달해 주고, 비행 스케줄이 맞지 않을때에는 동료 승무원에게 부탁을 했다. 깜짝 편지에 기뻐하는 승객을 보면서 나 또한 엄청 행복했다. 



 단체로 워크숍을 가거나 여행을 가는 손님도 많았다. 단체로 손님들이 타신 경우에는 최근 읽은 책에서 좋은 글귀나 평소에 좋아하는 말들을 바탕으로 비행이 마치기 전에 감사의 안내 방송을 하곤 하였다. 


"손님 여러분 편안한 시간 보내셨습니까? 저희 비행기는 제주 공항에 잘 도착하였습니다. (중략) 좌석표시등이 꺼질때까지 잠시만 자리에 앉아서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저희 한성항공을 이용해 주신 '00무역' 임직원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현대자동차 정주영 회장은 직원들에게 ' 한 번 해보기는 했어?'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이지만 '한 번 해보는 도전정신'으로 나날이 승승장구하는 '00무역' 되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짧은 멘트이지만 단체손님의 이름이 불려지곤 하면 박수를 치시곤 했다. 라디오나 방송에 나오는 것처럼 기내방송이지만 무언가 특별함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정식적인 서비스는 아니만 아내와 제주도로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여 떠나는 지상직 직원과 기내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라디오 사연처럼, 음료서비스를 마치고 남편이 직접 적어온 사연을 읽어 주기로 하였다. 


 "오늘은 저희 비행기를 이용한 손님의 특별한 사연이 있어 읽어 드리고자 합니다. 여보야 안녕. 결혼전에 자기 고생시키지 않는다고 약속했던게 기억이 나네. 결혼 하면서 그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하지만 우린 아직 젊고 앞으로 더욱 행복하게 해줄게. 제주도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즐거운 추억 만들자. 사랑해"


 갑작스러운 따뜻한 사연으로 기내의 온도는 너무 따뜻해졌다. 그리고 사연이 처음 읽혀지는 순간 기내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누가 사연의 주인공일지 기대가 되며 매우 부러운 눈치이다. 사연 방송이 끝나고 손님들의 박수소리와 '우와 사연의 주인공은 좋겠다'. 사연의 주인공이 자기인지도 모른채 부러워 하다가 자신이 주인공임을 알게 되는 순간. 감동의 도가니가 된다. 풍선아트로 만든 대형 꽃다발도 전해드리고, 사진도 찍어 드린다.  사연의 주인공도 감동화 행복이고,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 그리고 그것을 서비스하는 승무원도 매우 행복하다.  



 하나 둘 비행이 쌓여갈 수록, 다양한 업무를 하면서 많은 것을 알아갈수록 이일이 나에게 참 잘 맞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승무원 생활을 계속하면서 항공서비스 전문가로 은퇴하고 싶었다. '승무원의 서비스가 무형문화재'로 등록되는 그날까지. 항공서비스의 수준을 더 올리고 싶다라는 마음가짐 이었다. 승무원이 되기전 읽었던 책이 있었는데.  '3만 시간, ZZarie의 비행' (원동현) 이라는 책이었다. 남자승무원이 정년까지 비행을 한 그러한 내용이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이직을 해야만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승무원 일이 너무 좋았고, 꿈이었고, 항공업은 타 산업에 비해서 안정적인 산업중에 하나였다. 초기 비용이 많이 투입되지만, 자리를 잡게 되면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만에 하나 항공사가 운항중단 되더라도 다른 항공사와 인수 합병을 통해 사업을 영위해 갈 수 있다는게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경제 위기가 시작된다. 과도한 대출로 인해 미국 경제가 흔들리면서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주었다. 한국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주었고, 그 영향은 항공사에게 왔다. 초기 자금력이 부족했던 항공사는 은행에 대출을 받아 운영자금 등에 이용하였다. 매출을 통해 대출을 일부 상환하면서 대출을 추가로 받기도 하는 그런 식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항공사는 기업의 계열사로부터 자금 지원을 많이 받는다. 흑자로 전환되기 까지 인큐베이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독 항공사로 운행했던 한성항공은 미국 서브프라임발 경제위기의 쓰나미를 넘지 못했다. 2달간 무임금으로 비행을 계속 하였지만, 경제위기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는 운항중단에 들어갔다. 운항중단이 되고 나서, 새로운 투자자들이 나타났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 거래는 가격과 가치가 일치할때 일어나게 되는데, 운항중단과 채무가 있는 상황에서 투자는 싸게 샀으려 했을 것이고, 투자금과 미래가치를 높게 생각하는 경영진은 헐값에 넘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운항중단은 장기화 되었다. 이 시점에 첫 비행을 준비하던 전북항공은 항공기를 운항하지도 못한채 막을 내렸다. 김포공항 청사에서 우연히 목격했는데, 취항을 준비하던 승무원들에게 항공사가 운항할 수 없음을 듣고 슬퍼하던 광경이 생각난다. 또한 영남항공은 취항 2개월 만에 날개를 접고 말았다. 크나큰 경제 위기의 쓰나미는 알고 있어도, 피하거나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일하고 있는 항공사에서 더욱 많은 일을 감당하며 회사를 키우고 나도 커야 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입사한지 3년만에 저물어 가고 있었다. 나의 이직의 경험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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