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재원의 영어 여행기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유럽 배낭여행을 결심했다. 하지만 영어도 전혀 못 하고 준비할 것도 몰라서 일단 안전하게 단체에서 하는 배낭여행을 신청했다. 물론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여행도 하고 싶었지만 일단 영어를 못 하니 혼자 예약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겁이 나서 고민을 하다가 포기했다.
단체 배낭여행에서는 나의 역할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숙소나 버스까지 다 단체에서 해결해 주니 내가 하는 일은 그저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나게 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차피 영어를 못해도 길은 손짓 발짓으로 물어보면 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유럽에 가니 한국 사람들도 많고 영어를 못 해도 크게 불편한 것은 없었다. 특히 단체에서 어려운 사항들은 모두 해결해 주었기 때문에 사소한 불편함만이 따라올 뿐이었다. 하지만 그 사소한 일들이 쌓이다 보니까 점점 더 위축되고 자신감도 떨어졌다.
하지만 같이 사진 한 장 찍자는 말을 못 해서 안절부절 못 하다가 “give me a picture" 이라고 말한 뒤 스스로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졌던 일이나 편지 붙일 곳이 없냐는 질문을 못 해서 결국 포기했던 일을 떠올리면 어디 숨고 싶은 심정이다.
호스텔에서 만난 캐나다 친구들과 얘기를 하는데 10분이 넘게 멍하니 있다가 결국 good bye라고 말하고 부리나케 도망치면서 호스텔에서 얼마나 서러웠는지 모른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즐겁게 웃고 즐기는 데 그 무리에 속하지 못하고 못나게 도망쳐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어를 못해도 당당하고 뻔뻔하면 좋겠지만 원래 부끄러움이 없는 성격이 아니라서 쉽게 그러지 못했다. 거기다가 영어를 못한다는 생각에 더욱 위축되어서 기껏 간 여행에서 움츠리고 있었었다.
그러면서 영어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영어를 하면 내가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잘 하면 더 넓은 세계를 보고 경험할 수 있고 다양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 짧은 여행에서도 이런저런 불편함을 느꼈는데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불편함이 나를 함께할지는 경험해 보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다음번에는 꼭 영어로 말을 할 줄 아는 상태에서 해외여행을 한 번 더 나가 보겠다는 결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