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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민 Oct 17. 2022

오장환문학관

계간 『지구문학』2022년 가을호(통권 제99호) 발표작

이 글은 계간 『지구문학』2022년 가을호(통권 제99호)계간 『지구문학』2022년 가을호(통권 제99호)156-58쪽에 실린 수필 작품임을 밝혀 둡니다.

  나는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사람이다 보니, 문학에 관한 관심이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문학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도 많은 관심을 끌게 된다. 그런 내게 2004년 EBS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명동백작」은 매력적인 작품일 수밖에 없었다. 소설가 이봉구를 화자로 삼아 1950년대 문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마침 군대에 입대해 군사훈련을 받던 무렵에 터라 이른바 ‘본방사수’는 하지 못하고 종영된 지 한참이나 지나서야 유튜브로 봐야만 했다. 그래도 작품이 작품인지라 스테디셀러처럼 십 년도 훨씬 넘도록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은 드라마여서, 정작 방영하던 시절에는 볼 수조차 없었던 나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1950년대를 살았던 문인들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그들의 문학 세계와 삶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극 중에 등장한 여러 문인 중에 유독 ‘오장환’이라는 이름이 기억에 남았다. 극 중에서는 월북 시인으로, 공산주의 이념에 경도될 대로 경도되어 한국전쟁 초기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미처 피난하지 못한 대한민국 문인들을 다분히 강압적으로 선동하고 북한 측에 포섭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다니는 인물로 그려졌다. 쉽게 말해서 이념에 잠식당한 채 정치 선동꾼으로 타락한 문인의 모습이랄까? 해당 드라마가 2000년대에 방영한 데다 5‧16군사정변을 4‧19 혁명이 막 틔운 민주주의의 싹과 문인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짓밟는 사건으로 그린 작품임을 참작하면, 무슨 극단적인 반공주의 때문에 오장환 시인을 그렇게 묘사했다기보다는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의 비극을 생생히 그려내려는 의도로 그런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은 든다.

  드라마 작가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그 드라마로 인해 오장환이라는 비교적 생경한 시인은 내게 공산주의에 강하게 경도된 정치색 짙은 문인으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드라마에서 그렇게 묘사한 데다, 문인으로서 부끄러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오장환 시인의 작품을 제대로 접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월북 작가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경력도 있는 김사량의 문학 작품을 주제로 한 학술 논문을 세 편이나 발표한 경험이 있는 내가, 단순히 월북 작가라는 사실 때문에 부정적인 편견이나 혐오감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으니까.

  꽤 오랫동안 드라마에서 보여 준 이념투쟁에 경도된 극단적인 이미지로 각인된 오장환 시인의 이름을 다시 들은 계기는, 도서관의 문학창작 프로그램을 수강하는 아내를 통해서였다. 오장환 시인에 대해서 아느냐며, 도서관 프로그램에서 충북 보은의 오장환 문학관에 문학기행을 가는데 함께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다. 마침 시간적인 여유도 있었거니와 드라마에서 워낙 인상 깊었던 오장환 시인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그 덕분에 비가 쏟아지는 2022년 7월의 어느 날 아침부터 보은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 안에서 강사분께 들은 오장환 시인에 관한 이야기는, 드라마에서 본 이념에 경도된 극단적인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물론 해방 이후의 시인은 현실 비판적이고 현실 참여적인 색채를 강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그저 정치나 이념만을 외쳤던 문인으로 간주하기에는 시인의 시 세계가 담아낸 서정적인 향토애, 식민지 조선이 나아가야 할 미래 등의 수준이 매우 뛰어났다. 버스 안 강의를 들으며 나는, 그동안 알고 있었던 오장환 시인에 대한 이미지는 TV 드라마가 한쪽 면만을 그려낸 이미지였구나 하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충북 보은군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오장환 문학관에서, 나는 분단 현실로 인해 오랫동안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해 왔던 천재 시인의 진면모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정지용 시인의 수제자로 해방 직후였던 1947년 무렵 대한민국의 국어 교과서에 시를 올리기까지 했던 천재 시인은, 엄혹한 분단 현실 속에서 남북 양측에서 오래도록 잊힌 채 버림받아야 했단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서울에 와서 옛 지인들과 교류하는 가운데 북한에서의 삶이 고통스러움을 호소했다는 강연 내용은, 동족상잔과 분단 현실의 아픔을 강조하기 위해 각색한 TV 드라마의 묘사와는 사뭇 달랐다. 문학관 곳곳에 걸린 오장환 시인의 시는, 식민지 조선이 낳은 천재 시인이라 불렸던 시인의 감수성과 예술성을 아낌없이 보여 주고 있었다.

  일전에 박두진 문학관에 다녀온 적이 있는 아내는, 박두진 문학관보다 오장환 문학관이 규모가 많이 작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장환 시인이 건강 문제로 인해 30대 초반의 나이로 요절한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월북 문인이라는 이유로 30년이 넘도록 우리나라에서 금기시된 탓도 적지 않겠나 싶다. 하지만 오장환 문학관이 있기에 도서관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한참 동안 금기시되기까지 했던 시인의 참된 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은 고마운 일이다. 나조차도 오장환 문학관이 없었으면, 그리고 오장환 문학관에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오장환이라는 시인을 이념에 경도된 채 극단적인 언행을 일삼는 변질된 문인으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장환 시인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한 나를 축하라도 해 주듯이, 문학기행을 마치고 버스에서 내리자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화창하게 갠 하늘이 우리 부부를 해사하게 맞이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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