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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민 Jan 11. 2022

레오니드 하리토노프

이 글은 강릉작가회에서 2021년 12월 발간한 《강릉작가》 제3집 191-196쪽에 실린 글임을 밝혀 둡니다.

  러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는 대학 시절부터 알렉산드로프 합창단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 수능을 마친 고등학교의 마지막 겨울방학 무렵, 마트의 음반 코너에서 구 소련 국기의 낫과 망치 상징이 커버에 그려진 CD를 우연찮게 본 것이 그 계기였다. CD에는 테트리스 게임의 배경음악인 칼린카를 비롯한 러시아의 혼을 담은 노래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광고 문구도 붙여져 있었다. 러시아 문화에 대한 관심과 독특한 CD 커버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나는 그 길로 CD를 사서 집에 오자마자 음악을 틀었다. 지금까지 들은 노래와는 격이 다른 웅장하기 그지없는 박력 있는 곡조는 금세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줄곧 알렉산드로프 합창단의 팬이 되어 그들의 노래를 매일같이 듣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저명한 클래식 음악 평론가 안동림 선생의 책을 통해서 알렉산드로프 합창단이 본래 구 소련군 합창단에서 유래했고, 군악대가 아닌 예술 단체로 거듭난 뒤에도 단장은 현역 고급 장교가 맡으며 합창단의 대부분을 이루는 민간인 합창단원들도 공연 때에는 소련이나 러시아군 군복을 입고 공연을 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2010년대 초반에 접어들어 나는 유명한 SNS인 페이스북에 가입해서 지금까지 열심히 페이스북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나는 알렉산드로프 합창단에 대한 '팬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들이 가곡과 러시아 민요를 노래 부르는 영상을 페이스북에 공유하기도 했다. 분명 가곡과 러시아 민요였건만, 구 소련과 러시아의 군복을 입고 연주하는 그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 덕분에 나는 러시아 군가를 즐겨 듣는 독특한 취향의 소유자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사기도 했다.

  알렉산드로프 합창단의 공연 영상을 페이스북에 여러 차례 공유해서였을까? 페이스북의 '알 수도 있는 사람' 목록에 Leonid Kharitonov라는 이름이 뜬다. 턱시도를 차려입고 나비넥타이를 근사하게 맨 중년 남성의 모습이다. 이름은 그다지 낯익지 않지만, 한눈에 보아도 사진의 주인공은 러시아의 성악가이거나 오케스트라 지휘자임을 알 수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누구일까 싶어서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놀랍게도 알렉산드로프 합창단의 공연 영상이 잔뜩 올라와 있었고, 영상마다 프로필 사진과 달리 군복을 입고 알렉산드로프 합창단의 공연에서 솔로 성악가로 노래 부르는 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었다. 당연히 나는 레오니드 미하일로비치 하리토노프(Леонид Михайлович Харитонов) 선생과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했고, 선생은 곧바로 내 친구 신청을 받아 주었다. 어떤 인물인가 싶어 위키피디아 검색을 해 보니, 1960-80년대 러시아를 대표하는 베이스-바리톤 성악가였고 알렉산드로프 합창단과의 공연을 통해 역사적으로도 길이 남을 만한 명 연주도 수없이 남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성악가임에도 불구하고 냉전 시대로 인해 서구권에 그 명성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는 이야기 또한 읽을 수 있었다.

  음악 강국 러시아 음악사를 찬란하게 장식한 대 성악가, 그것도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알렉산드로프 합창단과의 열연을 통해 전설적인 공연을 여러 차례 이루어 내었던 마에스트로와 페이스북 친구가 된다니 영광스러우면서도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볼가 강의 뱃노래(Эй, ухнем!)」(주1), 「검은 눈동자를 가진 카자키 소녀(Черноглазая казачка)」(주2), 「벼룩의 노래」(주3) 등의 러시아 민요와 가곡 영상은 십 년이 넘도록 매일같이 들어오던 알렉산드로프 합창단의 노래가 가진 새로운 매력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웅장하고 박력 넘치는 알렉산드로프 합창단 특유의 음색이 드넓은 성량에 강인함과 여유로움, 낭만적인 감성을 함께 담아낸 하리토노프 선생의 독주와 어우러지며 빚어내는 노랫소리에서 나는 러시아 음악의 정수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전설적인 1969년의 「검은 눈동자를 가진 카자키 소녀」 공연에서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알렉산드로프 합창단을 세계적인 예술단체로 거듭나게 만든 장본인인 지휘자 겸 단장 보리스 알렉산드로프(Борис Александрович Александров)와 느긋하면서도 유쾌하게 연주를 이끌어가는 모습에서 나는 거장의 풍모가 무엇을 지칭하는가를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SNS를 통한 전설적인 성악가와의 교류도 소중한 추억을 마련해 주었다. 하리토노프 선생의 포스팅을 보면서 연주나 공연이 이루어진 연도나 장소, 작품의 의미 등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나는 그분의 포스팅에 댓글로 질문을 남겼다. 댓글로 질문을 남기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선생 본인의 답글이 달렸다. 모스크바와 한국의 시차를 고려하면 거의 즉각적으로 댓글을 확인한 뒤 답글을 남긴 셈이었다. 한 번은 유튜브에 올라온 「볼가 강의 뱃노래」 영상을 내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뒤 ‘러시아의 전설적인 베이스-바리톤인 레오니트 하리토노프 선생이 독주를 맡은 전설적인 볼가 강의 뱃노래 공연 영상으로, 1960년대 후반이나 1970년대 초반에 열린 공연으로 짐작된다’라는 설명을 한글과 영문으로 부연해서 적었더니, 하리토노프 선생이 그 포스팅에 댓글로 ‘이 영상은 1965년의 공연을 담고 있습니다’라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하리토노프 선생과 직접 만나 교분을 쌓지는 못했지만, SNS를 통해서 그토록 좋아하는 러시아 음악과 알렉산드로프 합창단을 대표하는 거장과 소통한 경험은 비할 데 없이 값졌다.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공연을 접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던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도 훌륭했지만, 머나먼 땅의 낯 모를 팬이 보여 준 관심에 대해서도 진솔하고 친절하게 받아준 거장의 따듯한 마음씨는 더없이 감동적이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알게 된 하리토노프 선생의 유튜브 채널에는 요즘에도 수실로 접속해서 명연주를 즐기곤 한다.

  2017년 9월의 어느 날, 페이스북에 영문으로 작성한 장문의 포스팅이 올라온다. 하리토노프 선생 계정에 올라온 포스팅이다. 무슨 글일까 싶어 자세히 읽어 보니, 선생의 아들이 올린 선생의 부고다. 1933년생인 선생이 84번째 생일 바로 다음날 영면에 들어갔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고령이기는 했지만 SNS를 통해 한 세대 뒤의 클래식 애호가, 러시아 음악과 알렉산드로프 합창단의 애호가에게 자칫하면 인지하지도 못할 뻔 한 20세기 후반 러시아 음악의 거장이 남긴 전설적인 공연과 따스한 마음씨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준 하리토노프 선생의 부고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고인의 예술혼을 지키려는 이들에 의해 지금도 활발히 운영 중인 하리토노프 선생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는, 공연 영상 외에도 한 시대의 거장이었던 고인의 이야기를 담은 러시아 TV 다큐멘터리 영상들에 제법 많이 올라와 있다. 하지만 공연 영상과 달리 다큐멘터리 영상은 제대로 본 게 없다. 러시아 음악과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달리, 러시아어 수준은 한없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사실 2~3년쯤 전 러시아어에 반드시 숙달되겠노라며 6개월가량 기초 코스를 공부하기는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그 윗 단계 공부를 이어가지 못한 탓에 내 러시아어 실력은 키릴 문자를 읽고 쓰는 수준, 아주 간단한 단어나 회화 표현을 더듬거리며 하는 수준이다. 그냥 초보도 아니고 왕초보에 불과한 내 러시아어 실력으로 러시아 TV 다큐멘터리를 이해할 리는 당연히 없다. 미루고 미루는 중인 러시아어 공부의 재개를 실천에 옮겨, 한 시대를 풍미했던 러시아의 전설적인 베이스-바리톤 성악가가 어떤 삶과 어떤 예술 철학을 가졌었는가를 조금 더 깊이 알아보고 싶다.


주1) 러시아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일을 하던 노동자들이 불렀던 노동요로,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러시아 민요의 대표작이다.
주2) 구 소련의 작곡가 마트베이 이사코비치 블란테르(Матвей Исаакович Бла́нтер)가 1966년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한 성악가 레오니드 하리토노프를 위해 작곡한 노래로, 말 편자를 수리해 준 검은 눈동자를 가진 이름 모를 카자키(Казак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일대에 분포하던 슬라브계 민족집단으로 기마술에 특히 능했음) 소녀를 그리는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다.
주3) 19세기에 활동한 러시아의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륵스키가 작곡한 가곡으로, 임금의 총애를 받아 왕비와 대신들마저 능멸하고 전횡을 일삼는 벼룩의 이야기(원 출처는 괴테의 『파우스트』임)를 가사로 삼아 제정 러시아의 부패와 모순을 풍자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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