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수필』 18권 수록작(2021년 11월 발간, 177-180쪽)
이 글은 2021년 11월 발간된 발간된 『영동수필』 18권 177-180쪽에 수록된 글입니다.
새로 이사 온 집 근처 이삿짐센터에 입구에는 진돗개 백구 견공 한 마리가 메어져 있다. 마치 도통한 사람처럼 골목길을 응시하며 행인들을 관찰하는 모양새다. 골목 입구의 이삿짐센터 입구에 묶여 사람 구경으로 소일하기란 활동적이고 사나운 진돗개의 성미에는 그다지 잘 맞지 않을 법도 한데, 이 친구는 매일같이 묵묵히 이삿짐센터를 지킨다. 행인 보고 짖는 일 한번 없이. 애견가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내 눈에 골목 입구의 진돗개 백구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리 없었다. 곁으로 가서 쓰다듬어주고 먹이도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남의 집 개다 보니 선뜻 그렇게 하기도 어려웠다.
어느 날이었나,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데 이삿짐센터의 진돗개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1~2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신나게 놀고 있다. 이삿짐센터 집 딸이나 손녀는 아닌 듯하고 동네 아이인듯한데, 여자아이도 그렇지만 진돗개도 아주 신이 나 있다. 마침 그 주변에는 그 여자아이의 부모님인듯한 여자분을 포함한 여자분 2~3명이 서 있었다. 진돗개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나는 그분들께 진돗개가 어떻게 여자아이와 저토록 친하게 지내는지 사연을 물어보았다. 그분들은 진돗개가 순하고 사람을 잘 따라 동네 명물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름이 아롱이라는 사실도 내게 알려 주었다.
아롱이. 나도 한 번 친하게 지내봐야겠다 하는 마음에 이삿짐센터를 지나며 ‘아롱아’ 하고 불러 보았다. 초면이겠지만 으르렁대며 공격 자세를 취하는 대신 약간의 경계는 하면서도 내게 관심을 보인다. 조심조심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으니 아롱이도 잘 받아 준다. 그날부터 이름 모를 이삿짐센터의 진돗개는 아롱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되었다.
아롱이와 조금은 친해진 듯하고 난 뒤, 나는 이삿짐센터를 지날 때마다 ‘아롱아 안녕’ 하며 인사를 건넸다. 바쁠 때면 인사만 건네고 가지만, 어지간하면 아롱이와 놀아주고 간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던지 한번은 주인아주머니가 먼저 나를 알아본다. 우리 아롱이 귀여워해 줘서 고맙다며, 아롱이에게 ‘너 예뻐해 주는 사람 왔으니 반가워해야지’라는 말까지 건넸다. 아롱이와 놀면서 혹시라도 아롱이 주인에게 오해 사는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주인이 내 마음을 알아주니 다행한 일이다. 그 덕에 나는 아롱이와 더 가까이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삿짐센터를 지날 때마다 아롱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놀아주니 아롱이도 조금은 날 알아보는 듯도 하다. 언제부터인가는 내가 ‘아롱아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거나 하면 꼬리를 흔들거나 배를 뒤집고, 놀아줄 때면 앞발을 들며 장난을 걸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는 내 아내도 ‘아롱이가 이제는 당신을 반가워하는 모습이 확실히 보인다’라며 놀라워한다.
며칠 전 인터넷 지도를 보니 아롱이가 이삿짐센터에 온 게 최소한 11년 전이다. 11년 전 사진에 찍힌 모습이 이미 성견이었으니, 적게 잡아도 만 나이로 12살인 셈이다. 그렇지만 아롱이를 보면 털이 깨끗하고 윤기가 흘러 노령견 같은 느낌은 그다지 주지 않는다. 이삿짐센터 주인도 수시로 목욕을 시키고 영양가 많은 사료와 간식을 주는 등 아롱이를 꽤나 아끼는 모양새다.
나중에 보니 매일같이 1~2시간씩 산책도 시키는데, 이 친구가 산책길에 만나면 뭐랄까 새침해하며 진짜 주인과 자기를 귀여워해 주는 이웃 사람 간에 차등을 두는 모양새도 보인다. 한 번은 산책길에 만난 주인아주머니가 아롱이를 보고 ‘너 귀여워해 주는 사람 만났으니 반가워 해야지’라고 말하는데도 새침 떼는 모습을 보인다. 이삿짐센터에서 만나면 배를 뒤집고 앞발로 장난까지 걸면서. 산책길에도 조금 더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마음도 들지만, 좋은 개라면 진짜 주인과 자기를 귀여워해 주는 이웃 사람은 구분할 줄 알아야겠지.
그나저나 아롱이는 진짜 동네 명물이다. 이삿짐센터 근처를 지날 때면 특히 어린이들이 아롱이에게 많은 관심을 보낸다. 어느 날엔가 아롱이를 쓰다듬으며 놀고 있으니 아들딸을 데리고 가던 어떤 아주머니가 ‘아롱이는 동네 사람이 모두 귀여워하는 우리 동네 명물’이라는 이야기를 하신다. 하루는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 두 사람이 아롱이에게 다가오더니, 나를 주인으로 인지한 듯 아롱이에 대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 그러더니 아롱이가 ‘살인적인 귀여움’을 갖고 있다며 사진을 찍고 난리가 났다. 이삿짐센터에 오랫동안 묶여 있는 일은 분명 편안하지 않겠지만, 주인의 정성 어린 보살핌에 더해 동네 사람들의 사랑까지 듬뿍 받는 ‘동네 개’의 삶은 분명 괜찮다고 봐야 할 듯싶다.
아롱이에게 인사를 건넨 뒤 쓰다듬어주고 있자니, 지나가던 할머니가 ‘개도 자기 예뻐해 주는 사람은 알아보는구나’라는 혼잣말을 하신다. 어느 하루는 차를 타고 가다 차창을 열고는 ‘아롱아 안녕’ 하며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자, 맞은 편에서 걸어오던 아주머니가 내 쪽을 보고 웃음을 짓는다. 옆자리에 타고 있던 아내는 진돗개 아롱이에게 만날 때마다 인사를 건네는 날 알아보는 동네 사람도 꽤 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동네 명물 아롱이에게 만날 때마다 인사하는 나도 동네 명물이 되었으려나? 십 년도 넘게 동네 골목 입구를 지켜온 아롱이, 이제 나이도 많이 들었지만 남은 시간도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