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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라마키 (2012)」

by 전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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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amaki」 15/100


깊은 산속의 한 실개천, 메탈 음악과 함께 한 남자가 돌탑 위에 돌멩이를 쌓으며 등장한다. 하얀 고글과 헤드폰을 쓰고, 주황색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집업 저지와 화려한 운동화를 신은 사내는 계속해서 돌멩이를 쌓다가 헤드폰을 벗고, 개울 가장자리에 놓인 커다란 캐리어에서 휴대전화를 꺼낸다. 사진을 찍는 것인지 전파를 잡는 것인지 휴대폰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감자칩을 먹기도 하고, 병을 꺼내 안에 담긴 액체를 마시기도 한다.

다시 캐리어 앞으로 돌아온 그는 해골이 그려진 티셔츠와 흰 속옷, 팔과 무릎에 감긴 붕대만을 남기고 옷을 벗어 캐리어에 넣는다. 그러더니 캐리어에서 붉은 액체에 담긴 무언가를 꺼내 바르고, 붕대 사이사이에 그것들을 끼워 넣기도 한다. 그러던 그는 붉은 액체에 담긴 것들을 산 이곳저곳으로 던져대기 시작한다. 그는 개울에서 손을 씻고, 세수를 하고, 물을 마신 뒤, 캐리어에서 짐승의 가죽을 꺼내 입고, 발톱이 달린 장갑을 끼고는 소리를 지르며 이곳저곳으로 뛰어다니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돌탑을 부수어댄다.

그렇게 개울을 뛰어다니다 지친 것인지 남자는 바닥에 엎드렸다가 이내 사슴뿔이 달린 탈을 들고, 밧줄에 목을 맨 채로 탈을 쓴다. 이후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애니메이션이 재생되며 늑대들이 남자의 몸을 하나하나 뜯어먹고, 그의 해골에 풀이 자란 모습을 보여준다.


이 남자가 원한 것은 무엇일까. 영화 초반 그는 그 누구보다 더욱 현대인 같다. 패셔너블한 옷차림, 감자칩, 그리고 와인처럼 보이는 액체. 그러다가 돌연 그는 그것들을 벗어던지고 짐승인 척 행세한다.

그런데 이 남자, 여전히 짐승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무언가가 프린트된 합성 섬유로 된 옷을 걸치고 있고, 네 발로 뛰어다니는 것이 아닌 그저 상채를 구부린 채로 두 발로 걸으며 짐승의 행세를 하고 있을 뿐이다. 물건을 던지는 것 또한 인간 고유의 특성으로, 그는 짐승이 되려고 하지만 여전히 짐승은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 포식자와도 같은 발톱이 달린 장갑이 그를 늑대와도 같은 짐승으로 만들어 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피식자인 사슴의 뿔이 달린 탈을 쓰고 스스로의 목을 매단 것일까.


영화는 내내 대사 없이 원테이크로 촬영된 남성의 행동만을 통해 진행된다. 그렇기에 남성의 변덕스러운 행위들을 관객들은 연속적이고 길게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그 행위를 관찰하더라도 그 사유에 대한 의문은 해갈되지 못한 채 굉장히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결말 부분으로 미루어 보아, 인간은 죽음 이외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식의 내용으로 보이는데, 정말 그러한가? 설령 그렇다고 해도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죽음을 선택해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해결되지 않는 과격한 메시지들에 대한 궁금증들이 찝찝하게 남는다.


관람 일자


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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