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윤리와 책임감, 시대를 건너는 기준

by 리도란

1년 중 어느 날이라고 마음이 편하기만 한 날은 없다. 요즘 내 일과의 대부분은 두 가지 싸움으로 압축된다.


1. 시간 부족으로 인한 강제적 효율성 추구

2. 책임과 직업윤리에 대한 기준과의 싸움


첫 번째 문제는 대체로 업무량이나 사람 관리 부담이 급격히 늘어날 때 생긴다. 이를 해소하려면 시간을 투자해 효율적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이 필수다. 그 과정을 건너뛰고 자연히 해결되리라 기대하면 ‘방치’라는 오명을 얻기 쉽고, 반대로 지나치게 초조해하면 말이나 행동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이럴 때 경험은 든든한 지지대가 된다. 많이 겪어보고 고생해 본 경험은 지금의 힘듦이 결국 흘러가는 물결과 같다는 것을 알려주고, 버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다. 그래서 같은 어려움을 겪는 초임 리더나 후배 리더들에게도 현실적인 조언을 건넬 수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소크라테스 시대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예의가 없다”라는 말이 있었듯, 세대가 바뀔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변한다. 시대가 흐를수록 평균 노동 강도와 시간은 줄어들었고, 결국 이 두 가지를 결합하면 “꼭 ○○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힘을 잃기 쉽다.


예를 들어보자.


A. 고객 만족을 위해 다소 불합리한 요청이 들어와도 웃는 얼굴로 응대한다.

B. 고객과의 약속이나 납품 기한을 지키기 위해 다소 어렵더라도 야간근무를 시행한다.


A와 B는 서비스업과 제조업에서 흔히 발생하는 상황이다. 호텔이나 백화점에서는 하루에도 수없이 정도를 넘는 요구를 하는 고객이 있고, 때로는 직원을 인격적으로 모독하기도 한다. 이럴 때 화를 낼 것인가, 웃으며 대할 것인가?


제조업에서는 물류나 생산 공정의 한 단계가 지연되면 전체 납품 일정이 흔들린다. 초과근무나 야간근무로 얻는 추가 소득보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이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결국 나는 업에 대한 책임감과 직업윤리를 시대적 변화의 대상이자 개인의 철학, 그리고 일종의 문화로 본다. 옳고 그르다는 시각으로 접근하면 언제나 너와 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합의를 이루어낼 것인가의 문제다.


“저는 월급 100만 원 더 받는 것보다 제 시간에 퇴근해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게 좋습니다.”라는 사람을 탓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런 토대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함께 만들어갈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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