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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 Sep 19. 2024

그 여름 바닷가 1

소도시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점심시간이면 양푼에 밥과 반찬, 고추장, 참기름을 비벼 한솥밥을 먹는 친구들과 가까운 바다로 1박 2일 놀러 가기로 했다. 여행은 텐트에서 자야 한다고 생각했지 펜션을 빌려 논다는 생각을 우리 누구도 하지 못했다.

아마도 우리의 여름 낭만은 바닷가 앞에서 텐트를 치고 노는 것이라고 생각한듯하다.


자고 올 것인가 말 것인가. 텐트는 누구 집에 있는지 가스버너와 냄비, 김치를 챙기고 라면을 가져오고 이불 한 장씩 챙기자가 전부였다. 도시락가방 하나만 챙기면 그릇과 수저젓가락은 해결되니 우린 토요일에 도시락을 싸들고 오기로 했다. 나는 엄마 김치가 맛있다는 이유로 고등학교 내내 김치를 담당했는데, 엄마에게 그날은 큰 반찬통에 김치를 많이 담아달라고 했다.

     

각자 집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다고 하기로 했다.

누가 누구네 집에 가고 이런 건 정하지 않았다. 우린 어차피 거의 집에 있지 않았다.

도시락 두 개를 싸들고 학교에서 종일 보내다가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열 시에 집에 가면 교복을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곧장 독서실로 가서 한두 시간 공부하다 독서실 의자를 책상에 올리고 바닥에서 자는 게 하루 일과였다. 아침 6시에 독서실에서 시끄러운 음악으로 기상 알림 하면, 일어나 각자의 집으로 가서 다시 교복으로 갈아입고 엄마가 싸놓은 도시락을 들고 학교로 가는 게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심지어 방학에도 학교에 갔다.

    

그렇다 보니 가족들 얼굴을 볼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내가 잘 살아있다는 것은 식탁 위에 올려놓은 도시락을 가져간다는 것으로 생사를 확인하는 정도였고, 나도 식탁에 도시락과 용돈이 있는 것으로 부모님의 안부를 짐작했다.   

    

토요일, 학교로 가져온 짐들은 교실구석에 차곡차곡 넣어두었다.

나는 김치국물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가방을 흔들거리지 않으며 등교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착하게 점심 도시락을 모여서 먹고 교복은 사복으로 갈아입고 터미널로 갔다. 시내에서 가까운 바닷가로 가는 버스를 타니 한 시간이면 도착했다. 바다를 본 친구들은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가방을 내팽개치고 "와~바다다" 하며 모래로 달려갔다.


교실밖으로 나온 친구들은 맨발로 신나게 뛰어다녔다. 친구 둘은 나 잡아 봐라를 하고 나머지 둘은 바닷가에 발을 담그고 발가락 사이사이에 모래가 들어오는 느낌이 간지럽다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바닷가 처음 와보냐물으니 이게 얼마 만에 보는 바다인지 모르겠다고 다.


바닷가에서 쭉 살다가 전학 온 나에게 친구들의 반응들은 낯설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만 버스를 타면 올 수 있는 바이건만 교실밖으로 나온 친구들은 내내 웃고 있었다. 나는 너희들이나 신나게 놀라며 바닷가는 질린다는 듯 손사래를 하며 돗자리를 펴서는 떨궈진 가방과 옷가지 짐들을 일렬로 세워두었다.

난 돗자리에 앉아 모래에서 조개를 파는 J에게 소리쳤다. 조개는 뻘이나 돌이 많은 곳에 있다고, 그러니 헛수고 말고 예쁜 조개껍데기나 주으라고 일러주었다.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파도소리 사이로 들리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선생님의 눈치도 없고 수업 종소리에 맞춰 웃음을 멈추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살았던 바닷가와는 다른 모습이구나. 같은 서쪽 바다라 물색을 비슷했다.

바다를 타고 위쪽으로 올라가면 내가 살던 집 앞 바닷가에 도착할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했다. 수평선이 반듯하게 그어진 딱 트인 바다에 배가 떠있지 않은 풍경이 익숙지 않았다.


부두에는 언제나 배들이 북적이고 오후엔 고기잡이 배와 낚시꾼들을 실은 배가 부두에 하나씩 도착해 조용했던 마을이 분주해진다. 기다렸다는 듯 어디서 몰려온 갈매기들은 손질하고 바에 던져지는 물고기의 잔해들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갈매기는 사람 주변에 있지만 결코 가까이는 오지 않으며 눈치가 빠르고 민첩하다. 엄마가 저리 가라고 욕을 해대면 어떻게 알고 엄마 차위에 하얀 똥을 싸놓고 가지만, 부둣가에 주차된 차들은 물방울 모양의 하얀 똥이 매번 차에 떨어져 있다.


부둣가의 야생 갈매기만 보다가, 넓은 바닷가의 수평선을 날아다니는 갈매기는 보니 먹고 살기보다는 자유를 갈망하는 가벼운 새처럼 보였다.  우리 동네 갈매기는 살이 통통해서 걸어 다니면 오리인지 비둘기인지 헷갈렸는데, 여기 갈매기는 양 날개를 펼치고 바다의 바람을 가르며 비스듬히 나는 모습은 매가 나는 것처럼 멋있었다.

난 갈매기들에게 조금만 더 올라가 날아가다 보면 나의 동네가 있으니, 그곳에 가면 먹을 것을 실컷 먹을 수 있다고 말을 해주고 싶었다.


바닷가를 고즈넉이 바라보는 사이, 붉은색의 어스름한 태양이 바닷물을 물들이고 있었다.

친구들은 모래에서 몇 발작 뛰어다니파도를 폴짝폴짝 뛰어넘고 없는 조개를 파겠다고 하더니 배고파졌다며 라면을 먹자고 했다. 각자 가져온 준비물을 꺼냈다. K는 가스버너를 보자기에 싸들고 왔고 J는 커다란 양은냄비를 책가방에서 꺼냈다. 나도 몇 겹의 비닐로 싼 김치를 뜯어내기 위해 꽉 묶어진 봉지입구를 손톱으로 열고 있었다.


우린 손발이 잘 맞아 역할을 나누지 않아도 알아서 행동하는 놀고먹는 재능이 있었다. 냄비를 들고 수돗가를 찾아가고 라면봉지를 뜯어 수프와 면을 분리해 놓는다. 내가 두 번째 김치봉지 묶음을 풀려고 할 때쯤, K가 가스버너에 냄비를 올리고 레버를 돌리는데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 이거 고장 난 거 아냐. "     

P는 바람이 너무 센 거 아니냐며 '바람 막아봐!' 하니 우린 친구의 말에 훈련된 학도들처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흩어져 있던 몸을 동그랗게 모였다. 다섯 명이 가스버너를 가운데 두고는 다시 한번 레버를 돌렸다.

그제야 아래를 보느라 고개가 아프던 K는 냄비를 내려보라고 가스구멍에 모래가 들어가 막혔을지도 모른다며 가스버너를 뒤집어서 흔들었다.

그때 버너 옆에 뚜껑이 열렸다. 부탄가스가 들어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린 동시에 너무 웃기다며 웃었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음 많던 우리는 부탄가스가 없다는 말에서도 웃던, 뭔들 웃지 않을 수가 없는 나이였다.    

 

동그랗게 모여있던 몸은 웃느라 흩어지며 Y와 P는 슈퍼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슈퍼주인이 가스를 분다고 의심할지도 모르니 계산을 하면서 라면 끓여 먹으려고 산다며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당시 비행청소년들은 가출하면 본드나 부탄가스를 분다는 소문을 들었던 터라, 실제 부탄가스를 마주하자 만지는걸 서로 기피했다.


버너 뚜껑 안쪽은 엑스표시가 많은 설명서가 붙어있었다. 죄다 위험하다는 경고문구를 본 K는 부탄가스를 어떻게 넣는지 모른다고 했다. 자신들도 부탄가스를 만 질 일이 그동안 없었다는 고백들을 한 사람씩 했다.

그러면서 부탄가스가 내 앞으로 왔다.     


바닷바람 맞으며 자란 내가 자신들보다는 강해 보인단다.

나도 귀하게 자라서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엄마가 불 좀 줄이라고 하면 줄이고 켜라 그러면 켰지, 부탄가스를 직접 넣어본 적은 없었다.

난 어깨너머로 본걸 경험 삼아 일단 부탄가스를 흔들었다. 그러자 친구들이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비겁한 것들' 부탄가스를 넣었다. 뚜껑을 닫았다. 안 닫혔다. 부탄가스를 이리저리 돌리자 입구의 구멍 난 홈으로 뭔가가 들어가자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았다. 뚜껑에 붙어진 설명서를 보고는 따라 했다. 이젠 가스레버 내린다. 그러자 '칙~'소리에 나도 놀래서 뒤로 물러섰다. 친구들은 아까보다 한발 더 떨어져 있었다.


설명서 지시대로 수평 있는 평평한 시멘트 바닥 위에 가스버너를 올려두고 '칙~' 소리가 다시나고 힘껏 아래까지 깊이 내렸다. 이건 엄마가 하는 걸 봤다. 그러자 ‘딱’하고 잠기며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가스레버를 돌리자 불꽃이 튀며 가스구멍에서 불이 들어왔다.

불이 켜지자, 뒤로 도망가있던 친구들은 다시 앞으로 모여서는 함성과 함께 박수를 처댔다.


가스불꽃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자 친구들은 바람을 막으라는 말을 한 적도 없는데도, 동시에 몸을 다시 동그랗게 말았다. "야, 이거 꺼지면 안 돼. "

최초의 불을 발견했을 때 이랬을까. 친구들은 이 불이 꺼지면 라면을 못 먹을 수도 있기에, 배고픔의 허기짐과 두려운 불 사이에서 갈등하더니 이번엔 자발적으로 불 앞에 모여들었다. 우리가 불을 만들어내기 위해 모였다 흩어졌다는 반복하는 사이에 양은냄비 속에서 물방울들이 보글보글 올라왔다.      


나는 아까 풀다가 만 두 번째 김치봉지를 뜯었다. 점심때 먹은 도시락을 꺼내서 밥풀이 묻은 도시락통과 젓가락으로 라면을 덜어먹었다. 도시락 뚜껑을 국자 삼아 국물을 떠먹고 바닷가 앞에서 라면을 먹는 사이에 해지는 주황색 노을빛이 넓은 하늘에 펼쳐졌다.


뭔가 아쉽게 먹은 우린 양이 채워지지 않자 냄비를 더 큰걸 가져올 걸, 라면을 더 들고 올걸, 아까 슈퍼에 갔을 때 라면을 살걸 등 아쉬운 소리를 하며 남은 김치를 아삭거렸다.

역시 너네 엄마 김치는 최고야 라는 말도 덧붙이며 내일도 먹어야 하니 그만 먹자며 뚜껑을 닫았다.

나는 다시 두 개의 봉지를 하나씩 묶었다.


우린 석양의 바닷가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포만감이 서서히 몰려오며 조용해졌다.

P가 말했다. "야 우리 텐트처야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한번 조련된 학도들처럼 몸을 일으켰다.  

    

P는 가족들과 텐트에서 자본적이 있다며 집에 있는 텐트를 그대로 들고 왔다. P가 텐트를 꺼내자 서로 구겨진 텐트를 펴려고 손을 보탰다. 바닥에 우선 펼쳤다.

이게 어떻게 텐트가 되는 거냐고 어디가 앞이고 뒤냐며 시끄럽게 말을 해대는 사이 P는 폴대를 능숙하게 끼웠다. 우린 텐트의 모서리 꼭짓점에 한 명씩 배치되어 서있었다. P가 폴대를 봉제선 안으로 집어넣었다. J 쪽으로 폴대가 나오자 P는 힘차게 말했다.

"모서리에 끼워. " 양쪽의 폴대가 반달모양으로 휘어지며 바닥에 납작하던 텐트가 들어 올려졌다.

우린 가스불을 만났을 때와 같은 함성을 질렀다. "오오 "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마치 빨랫줄을 널 듯 텐트는 휘어진 채 바닥에 쓰러졌다. 우린 P에게 근데 이게 어떻게 텐트모양이 되는 거냐고 다시 물으니 기다려 봐봐 했다. 역시 사는 집에는 다르다며 한 마디씩 했다. P는 우리 중 유일하게 과외를 받는 친구였다. 그러나 성적은 고만고만해서 딱히 P를 부러워하지는 않았다.


다시 폴대를 끼우고 들어 올리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다가 지쳐갔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이과 친구인 M을 데리고 왔어야 한다며 투덜댔다. 텐트 조립하기는 수학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였지만, 우리는 머리를 쓰는 일에는 모두 수학 탓이라고 몰아대는 경향이 있었다.


해가지고 어둑해진 하늘 위로 별이 보였다.

우린 좀 쉬었다 하자며 쓰러진 텐트를 다시 세울 생각은 원래 없었던 것처럼 돗자리에 누웠다. 우리 오늘 이러다 이 돗자리에서 자야 하는 거 아니냐며, 텐트보다 돗자리가 더 크고 넓다며 웃어댔다.

누워 하늘의 별을 보고는 손가락으로 알지도 못하는 별자리를 찾아대다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국자모양의 북두칠성을 찾으며 또 웃어댔다.

     

그때, 누군가 Y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Y가 벌떡 일어났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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