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A Sep 21. 2024

우리가 그토록 싫어하던 1

소도시


고3 반 배정이 되었다.

2학년 여름을 함께한 친구들과는 다른 반으로 흩어지고 J와 나만 같은 반이 되었다.

담임도 내가 좋아하는 문학선생님이었다. 나는 학기 초에 반장으로 뽑혔고 선생님은  잠자리안경을 쓴 환한 얼굴로 수고해 달라며 나의 어깨를 토닥이셨다.


선생님은 3월에 결혼을 하셨는데, 피아노 전공하는 친구가 반주를 하고 우리 반은 합창으로 축가를 하기로 했다. 제자들의 합창을 선물 받은 선생님은 결혼식에서 안경사이에 손을 넣고 눈을 닦으며 감동이라는 표현도 아끼지 않으셨다. 신혼여행에 다녀온 후 우리의 선물도 챙겨 오시고 조회시간에는 잔소리대신에 아름다운 시를 읽어주셨으니 문학선생님이 담임이란 사실이야말로 감동이었다.      


교장실에서 여덟 학급인 고3 반장들을 불렀다. 각진 가죽소파가 일렬행진으로 두 줄 이어져 있었고 가운데 탁자가 있고 교장선생님은 가운데 앉으셨다. 탁자에는 빨대가 꽂힌 요구르트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교장, 교감 선생님은 공부하느라 수고한다며 격려해 주셨고 교실의 면학분위기를 부탁한다며 마지막 학창 시절의 추억을 많이 만들라고 하셨다. 둘러보니 모두 나보다 성적은 상위권인듯해서 공부하느라 수고한다는 말은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말하는 듯했고, 추억을 많이 만들라는 말은 나를 보며 이야기하시는 듯했다.

찔린 건 나 하나인듯해 나만의 관점으로 해석하고는 교장실을 나왔다.


그 후로 각반에 화분이 놓였는데, 반장이 된 친구들이 교실에 하나씩 사서 넣는다고 했다. 나는 그제야 엄마에게 반장이 되었는데 화분 하나만 사달라고 했다. 엄마는 기죽지 말라는 듯, 잎이 많은 야자수 분위기의 커다란 식물을 교실에 배달해 줬다. 그러나 교실 앞에 놓인 식물의 잎이 자라며 시간표를 가리는 바람에 야자수는 사물함 뒤로 물러나야 했다.      


3월이 지나고 4월이 된 어느 날, 아침부터 복도와 교실이 술렁거렸다.

각 교실 게시판에는 다시 반배정을 한다는 통보와 함께 이름옆에 어느 반으로 이동하는지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친구들은 등교하자마자 자신이 몇 반으로 재배정되었는지를 확인하고는 복도에 나와서 너는 몇 반이냐고 서로들 물었다. 김지아 현재 4반/ 변경 3반


조회종이 울리자 어수선했던 복도의 학생들은 깨끗이 교실로 들어가 조용해졌다. 문학선생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3학년 반배정이 잘못되었다는 교육청의 안내에 따라 반이 재배정되었습니다. 각반의 담임선생님은 바뀌지 않고 학생들만 재배정됩니다. 조회가 끝난 후 게시판에 적힌 반으로 짐을 챙겨서 이동하면 됩니다.

이렇게 혼란스럽게 되어 미안하게 생각해요. 한 달이었지만 여러분과 좋은 시간 보내 즐거웠습니다. 아쉽지만.. 그럼 문학수업시간에 만나요.”     


선생님의 찐 팬이었던 몇몇 친구들은 조용히 울먹였다. 선생님은 마지막에 나와 눈이 마주치며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각반에 비슷한 말들이 조회시간에 전해졌는지 몇 분의 시간차이를 두고 반에서 시끄러운 소리들이 한꺼번에 흘러나왔다. 아씨, 뭐냐, 싫어요 하는 소리가 복도밖으로 들렸다.

각반에 조회가 끝나고 다시 시끄러워졌다.      


진짜 이유는 이랬다.

고3이 되고 학교는 문과는 1반, 이과는 5반에 공부 잘하는 애들을 모아두기로 했다. 면학분위기를 만들고 집중교육하여 좋은 대학에 더 많이 보내기 위한 학교의 전략이었다.

그러니깐 문과 2반, 3반, 4반. 이과 6반, 7반, 8반은 중. 하위권 아이들만 모아둔 반이었다.

반 배정 후, 일명 우열반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의 학부모들이 반발하여 항의를 했고 교육청에서 조사가 나오자 반이 재배정되었다.

내가 다닌 여고는 사립고등학교로 부모들의 관심과 지원이 많은 학교였다. 예체능 지원에도 적극적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우열반 친구들은 4개의 반에 골고루 흩어져 재배정되었다.  

    

나는 짐을 챙겨 옆교실로 이동했다.

다른 반은 모두 환호소리가 들렸고 반갑다며 서로들 손바닥을 마주치며 시끌 시끌 댔지만, 3반만 조용하고 암울한 분위기였다. 다시 같은 반이 된 문학선생님의 팬이던 친구, J와 나는 뒷자리에 앉았다. 2반에서 3반이 된 Y는 오자마자 의자를 발로 차면서 성질을 부리며 싫다는 티를 팍팍 냈다.


유일하게 웃는 건 3반에서 다시 3반이 되었지만 친한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좋다는 K였다. 학생들은 모두 재배치된 반으로 들어가고 각반의 담임선생님이 다시 들어오셨다. 3반으로 이동된 학생들은 하나같이 실망된 표정으로 불량하게 앉아 있었다.

담임이 들어왔지만 학생들은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온몸으로 입으로 싫다는 걸 담임 앞에서 들어내놓고 있는, 만사 귀찮은 말년병장의 모습처럼 삐뚤게 앉아있었다. 안 그래도 고3인데 우열반 하나 때문에 이런 어이없고도 귀찮은 소동을 학기 초에 겪었다는 것이 그저 짜증 날 따름이었다.

다른 반들의 밝은 웃음소리들만 듣고 있어야 할 만큼, 3반은 침울하고 조용했다.     

 


                                                                                                                      다음 회에 계속~



이전 04화 그 여름 바닷가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