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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 Sep 25. 2024

나는 여고생 때 리더십을 배웠다

소도시

3반의 학생조합은 그야말로 스펙터클 했다.

담임을 극도로 싫어하는 학생 오분에 일, 그냥 싫어하는 학생 오분에 일, 어떤 선생님이든 상관없는 학생 오분에 일, 학교도 학업에도 관심 없지만 담임도 싫은 학생 오분에 일, 우열반에서 파향온 학생 오분에 일, 그리고 똥꼬를 좋아하는 한 명의 학생. 이렇게 구성되어 있었다.


몇 달 후, 똥꼬가 좋아하는 특정학생 한 명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담임은 3반의 거칠고도 통제가 안 되는 학생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 명의 장미와 같은 학생에게 마음을 주는 어린 왕자가 되기로 한 건지, 유독 한 명의 학생에게 대놓고 다정했다.

그 모습이 더 꼴배기 싫었으니 똥꼬는 미움받기 위해 선생님이 된 사람 같았다.      


수학시간이 끝나고 당번들이 칠판을 지울 때에도 똥꼬가 그려놓은 그래프와 숫자들이 지워지지 않는다며 욕을 해댈 만큼, 그저 칠판에 도형을 그렸을 뿐인데도 똥꼬는 온갖 이유를 붙어 싫어했다.

학교에 오고 3년 차에 담임도 맡게 된 똥꼬는 새 차를 뽑았다. 우린 주차장에 파란 새 차를 보면서 욕을 해댔다. 차는 죄가 없었지만, 똥꼬가 타고 다닌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차는 욕을 먹어야 했다.

똥꼬는 학생들에게 심한 말을 하거나 인격모독등을 못하는 성격이었지만, 우린 똥꼬가 없는 곳에서 똥꼬를 모독해 댔다.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성실히 노력했던 똥꼬의 1년은 순탄하지 않았다.   

  

난 고2 때도 부반장이었기에 학급운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친한 친구들이 도와줬다. 그러나 수능을 앞둔 고3은 아무도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조직개편을 고민했다. 간소화하기로 했다. 반에 꼭 필요한 것은 당번. 청소. 총무등이었다.

당번, 청소배정, 행사, 회의진행은 내가. 부반장이 총무, 서기를 하고 세부적인 위원회 구성들을 없앴다. 학급회의는 행사와 중요안건이 있을 때만 하기로 했다.

     

반분위기는 이랬다. 학기 초에 반이 한번 바뀌고, 매드일당이 한꺼번에 우리 반으로 들어왔고, 똥꼬를 싫어하는 애들의 비율이 높으니 반은 그야말로 어수선했다. 우열반에서 파향온 부반장과 나는 이 반을 잘 이끌어야 하는데, 나야말로 주변에 공부 잘하는 애들과 친해본 적이 없던 터라 둘의 관계가 서먹했다.

부반장도 마찬가지였다. 놀아본 친구가 없던 터라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언니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반장은 나와 나의 주변 그러니깐 Y, J, K 심지어 매드일당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나는 부반장의 친근한 어색함이 어색했지만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기로 했다. 나는 모두의 반장이니깐.   

   

어수선한 분위기가 한 달 동안 이어졌다. 나는 반장으로서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일찍 학교에 갔다. 그러나 엄마가 나를 깨우지 않고 나간 날, 지각을 했다. 수업이 시작되고 나는 조용히 뒷문을 통과해 오리걸음 자세로 기어가며 뒷자리인 내 책상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딱지로 접은 쪽지가 놓여있었다.


“반장, 공부할 수 있게 학급분위기 좀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어. 우린 고3이잖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필 지각한 날 이런 쪽지까지 받다니 반장으로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쪽지를 준 친구는 우열반에서도 일등이던 친구로 동기부여를 위해 서울대 배지를 필통에 넣고 다녔고 학교에서도 애지중지 지켜보는 친구였다는 것. 난 그때 처음으로 우열반을 왜 만들려 했는지 학교입장이 이해가 됐으며 다시 우열반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바꿔먹었다.


그때부터 난 반장으로써의 책임감을 가지기로 했다. 친구의 꿈을 도울 수 있는 나의 방법은 오직 교실을 조용히 공부하는 분위기로 만들고 떠들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나의 첫 번째 리더십의 실험이었다.

난 모두의 반장이 되기 위해서는 신임이 필요하다. 낯선 우열반 아이들까지 섭렵하려면 모두와 잘 지내는 친구여야 하니 우열반 친목은 부반장이 맡고 나는 나를 비롯한 중간학생들과 건들면 안 되는 매드일당을 담당하기로 했다.     


우리 반은 성악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아빠가 학교 이사장이었으며 그 친구 또한 서울대를 목표하고 있었다.

똥꼬는 학부모들에게도 과하게 친절했다. 성악친구는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개인 음악회와 각종 연주회 참여등을 열었다. 공연으로 학교에도 듬성듬성 빠지는 학생이었다. 똥꼬는 나와 부반장에게 꽃다발을 준비하라고 했다. 왜 그러냐니 성악친구의 음악회에 가야 한다고 했다.


똥꼬는 자신의 차에 나와 부반장을 태우고 공연장에 갔다. 셋이서 차에 탔을 때 나는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얼마 전에 똥꼬의 새 차에 친구들과 함께 흙을 던지고 도망갔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이 차가 나를 기억하고 있는 듯해 가시방석인 차를 탔으니 나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부반장이 똥꼬와의 관계가 우호적이다 보니 나는 입을 다물고 있어도 되었다. 고맙게도 우리 반이 일 년 동안 유연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부반장의 편견 없는 마음 덕분이었다.      


교복만 입던 친구는 화려한 드레스차림에 화장과 머리까지, 미스코리아가 따로 없었다. 교실에만 보던 친구가 무대에서 노래를 하니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된 것 같아 거리감이 느껴졌다. 친구에게 줄 꽃다발은 꽃집에서부터 차를 타고 공연하는 내내 나의 손에 있었다. 내 꽃이라 해도 믿을 뜨거운 손잡이 꽃다발을 드디어 친구에게 공손히 건네면서 멋있다는 말도 했다.      


고3이 되니 매드일당은 대학에 뜻이 없다며 학교에 조금이라도 있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예체능을 하면 야간자율 학습을 빼주기 때문에 매드일당은 하나씩 악기며 입시미술등을 선택하고 학원에 간다고 나갔지만, 학원에 갔는지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가끔 그녀들의 하는 대화를 들어보면 대학생들과 미팅을 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나와 친구들은 빵집과 분식집중 어디로 갈지를 고민할 때, 그녀들은 알코올이 흐르는 간판이름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성숙한 몸매와 여성미를 갖춘 아우라를 가지고 있어 허리라인부터 다리길이까지 교복핏이 남달랐으니 사복을 입어도 대학생처럼 보였다.


난 웬만하면 매드일당과 우호적으로 지내기 위해서 그녀들에게 청소를 시키기 않았다. 청소시간에 놀다가 끝날 때쯤에 오면 그저 맨 마지막에 쓰레기통만 일 년 내내 버리게 했다. 매드일당은 언제나 뭉쳐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행사, 이벤트등 머릿수를 채워야 하는 일이 생기면 그냥 앉아서 호응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매드일당을 관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땡땡이를 처도 선생님에게 이르지 않기, 거짓말해 주기, 학급일 웬만하면 시키지 않는 일 따위였다.


그렇게 무사히 내 공부는 뒤로하고 반을 운영하는데 혼신을 다하고 있는 사이사이로 고3은 묵직하게 흘러갔고, 담임을 욕하고 친구들과 놀며 진로를 고민하며 우린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이제 교복을 입지 않아도 되는 스무 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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